[야구유감(有感)]1983년부터 수준 떨어지고 있는 KBO

[야구공작소 오연우] 이런 농담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해병대는 2기부터 전부 군기 빠졌다.”

흔히 ‘너희들은 우리 때에 비하면 군기 빠졌다’고 한다. 이 말이 맞다면 (이 말을 해 줄 사람이 없는 유일한 기수인)1기를 제외한 모든 기수가 군기 빠진 기수가 된다. 물론 진짜로 그럴 리는 없지만, 이런 표현에 있어 KBO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프로야구는 수준이 떨어진다.”

역사적으로 “요즘 프로야구는 수준이 떨어진다.”는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수준으로 반복되어 왔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해마다 수준이 낮아진 프로야구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아래에 몇 가지 사례를 나열해 보았다.

1984년 : “선수들이 프로수준에 합당한 플레이를 한다고 볼 수도 없지만 충분히 믿을 만한 심판도 거의 없어 프로야구는 더욱 저질화하고 있다.”(4월 28일 경향신문)

1989년 : “89프로야구는 투수력이 상당히 약해졌으며 공격력 또한 다소 뒤떨어지는 등 전체적인 수준이 예년에 비해 하향조정된 것으로 분석됐다.”(8월 8일 경향신문)

1992년 : “구단의 운영이나 선수들의 자세, 경기수준 등이 아직 아마추어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0월 16일 동아일보)

1996년 : “프로야구의 수준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5월 28일 한겨레신문)

1998년 : “상품의 질인 경기력이 크게 떨어졌는데 ‘우리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걸 구매할 팬은 이제 크게 줄었다는 말이다”(11월 5일 한겨레신문)

심지어 프로야구가 시작되기 전인 1981년에도 미리 이듬해 생길 프로야구의 수준 저하를 걱정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프로야구 수준 저하를 우려하는 1981년 12월 26일 경향신문>

아니나 다를까. 올해에도 이 유구한 ‘수준 저하 기사’의 명맥을 잇는 매체들이 보인다. 내용도 무척 전통적이다. 어처구니 없는 플레이 몇 개를 나열한 뒤 실책과 볼넷이 늘었으니 리그 수준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기본기에 충실한 플레이를 하며, 아마야구를 육성하고, 경기수를 줄이는 것이 해결책이다.

 

이렇게 리그 수준을 논하는 기사들과 관련해 크게 3가지 논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애당초 ‘리그 수준’은 무슨 뜻이고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2. 실책과 볼넷이 리그 수준을 평가하는 적절한 지표인가?

3. 실책과 볼넷이 유의미하게 늘긴 했는가?

 

1. 리그 수준은 무슨 뜻이고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우선 리그 수준을 ‘리그에 소속된 선수들의 평균 야구 실력’이라고 정의해 보자. 과히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리그 평균 야구 실력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다양한 리그 지표 중의 하나일 수도 있고 누적된 국제대회 성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는 확실하다.

1-1 몇 가지 특징적인 플레이로 리그 수준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일 년에 수백 경기씩 치르다 보면 그 중 몇 경기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실책이 나오고 16구 연속 볼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두 번의 플레이가 리그 평균 야구 실력은 아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명확하다. 메이저리그급 호수비가 몇 개 나왔다고 리그 수준이 메이저리그급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1-2 리그 타율이나 리그 평균자책점 같은 투타 상대 성적으로 리그 수준을 평가할 수는 없다. 투수와 타자 모두 100점인 리그와 모두 10점인 리그가 있다면 두 리그 모두 리그 타율은 비슷하게 나올 수도 있다. 리그 타율이 같다고 메이저리그와 KBO, 퓨처스리그가 같은 수준은 아니다. 따라서 투타 상대 성적이 아니라 절대 성적을 볼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

 

2. 실책과 볼넷이 리그 평균을 평가하는 적절한 지표인가?

위의 맥락에서 2번을 생각해 보자. 볼넷은 몰라도 최소한 실책은 그럴싸해 보인다. 실책은 상대와 관계 없이 야수 개개인의 수비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어떤 선수의 실책과 수비 수준은 거의 관계가 없다. 실책은 수비라는 행위를 둘러싼 입체적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그나마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실수하지 않는 능력’ 정도겠지만 사실 아예 수비 시도를 하지 않으면 실수도 없다. 얼마나 많은 외야수들이 ‘실수하지 않고’ 공을 앞에 뚝 떨어뜨리는가. 전성기 이종범도 실책이 많았다는 반례는 이제 지겨울 정도다.

아래의 연도별 경기당 실책을 봐도 마찬가지다. 실책이 수비력의 지표라고 생각한다면, 21세기 이후 KBO 선수들의 수비 실력은 한 걸음도 나아지지 않은 걸까?


<연도별 경기당 실책, 올해는 6월 18일까지>

볼넷으로 리그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지는 조금 더 어려운 문제다. 볼넷을 제구력의 지표로 보는 것은 나쁘지 않은 접근이다. 하지만 투수의 실력을 왜 제구력으로만 평가해야 하는가? 가령 구속은 어떤가? 직구 구속이 빠를수록 헛스윙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요즘 투수들은 명백하게 과거보다 빠른 공을 가지고 많은 삼진을 잡아낸다. 구속도 리그 수준 평가 항목에 넣어줄 수 없을까? 유독 구속이 빨라졌다는 이야기는 ‘체격만 웃자란 선수들’, ‘외형만 발전한 프로야구’와 같은 부정적 맥락에서만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 타자도 고려해야 한다. 19세기에 볼넷이 투수 실책으로 기록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볼넷은 투수의 잘못만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 아무리 제구력이 좋아도 배리 본즈 9명이 있는 타선을 상대할 때 볼넷을 내주지 않을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타자의 영향이 적을 수는 있지만 볼넷도 엄연히 투타 상대 기록이다.

연도별 변화 양상을 보면 분명해진다. 볼넷이 리그 수준을 반영한다면 1982년부터 38년간 KBO 투수들은 아무런 발전이 없었던 셈이다.


<연도별 볼넷 비율(BB%), 올해는 6월 18일까지>

 

3. 실책과 볼넷이 유의미하게 늘긴 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위의 두 그래프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큰 차이라 느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은 온전히 개개인의 판단에 따른 영역이다.

 

제발 언론만큼은

사실 리그 수준과 관련해 팬과 선수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어떻든 큰 상관이 없다. 높아졌다고 느끼든 낮아졌다고 느끼든 개인의 감상일 뿐이다.

그러나 언론만큼은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 리그 수준이 무엇이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정말로 낮아졌다면 그때 ‘긴급진단’을 내려도 늦지 않다. 단편적 정보의 편집적 나열과 ‘클릭 유도성 제목’의 조합체를 기사라고 불러야 한다면 슬픈 일이다. 같은 패턴이 몇 년이고 반복되다 보니 2019년 기사가 80년대, 90년대 기사와 진단도 같고 처방도 같다. 공허한 이야기들뿐이다.

다 같은 야구계 종사자로 내가 내 상품의 가치를 깎아내리면 누가 그 물건을 사겠으며 소는 누가 키우는가. 따끔한 충고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의미 있는 발전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노력이 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에디터 = 야구공작소 송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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