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드업, 꼭 해야 할까?

< 사진 = SK 와이번스 제공 >

투구의 핵심은 기계적 반복성이다. 같은 동작을 얼마나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가 투구의 정교함을 좌우한다. 릴리즈 포인트(Release point, 투구 시 투수가 공을 뿌리는 마지막 지점)가 많이 흔들리는 투수에게 좋은 제구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투수의 투구자세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와인드업(Wind up)과 스트레치(Stretch) 포지션이다. 와인드업은 투수가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시선은 공을 던지기 전까지 홈 플레이트를 향하는 투구자세다. 반대로 스트레치 포지션은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취하지 않고, 공을 던지기 전까지 시선은 우투수는 3루, 좌투수는 1루를 향하는 투구자세다.

투수는 자유롭게 두 자세 중 하나를 선택해 투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주자가 없으면 와인드업, 주자가 있으면 스트레치 포지션으로 투구한다. 일반적으로 와인드업으로 투구하면 스트레치 포지션으로 투구하는 것보다 주자 견제에는 불리하지만 구위가 더 좋아지고, 스트레치 포지션으로 투구하면 구위는 감소하지만 주자 견제에 유리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점을 투구의 반복성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한 가지 자세를 일정하게 반복하기도 쉽지 않은데 두 가지 자세로 던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투수는 꼭 와인드업과 스트레치라는 두 가지 자세로 던져야 할까? 만약 투수가 두 가지 자세를 모두 연습하는 대신 스트레치 포지션 하나만을 연마해 주자가 없을 때도 스트레치 포지션으로 던진다면 어떨까?

 

흔히 와인드업으로 투구하면 스트레치 포지션으로 투구하는 것보다 구위가 좋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와인드업 동작이 스트레치 동작보다 시간상으로 더 여유롭고 외관상으로도 더 역동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투구자세에서 오는 구위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2001~2003년 홀드왕을 차지하기도 했던 차명주 코치는 와인드업과 스트레치 포지션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두 유형의 차이점은 축발(우투수의 경우 오른발)에 힘을 모으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와인드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모을 수 있고 세트 포지션은 빠르게 모아야 한다. 빠르든 느리든 힘만 잘 모을 수 있으면 구위에 차이는 없다.”고 답했다.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조경환 前 KIA 코치 역시 “현역 시절 투구 자세에 따라 이렇다 할 차이를 느낀 적은 없다.”고 밝혔다.

 

와인드업의 불필요함에 주목하는 연구는 꾸준히 있었다. 2010년에 이미 와인드업과 스트레치 포지션에서의 구속 차이에 대한 하드볼타임즈의 연구가 있었고, 2016년에는 vocativ라는 매체에 ‘도대체 왜 와인드업을 하는가?(Why does any pitcher use a windup?)’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지난해에는 팬그래프에도 와인드업의 필요성에 관한 칼럼이 실린 바 있다.

이전 연구들은 일관되게 와인드업이 스트레치 포지션에 비해 (최소한 현재까지의 데이터로는) 특별한 이득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연구 중 스탯캐스트 데이터를 이용한 비교는 이루어진 바 없는 것으로 보이며, 이번 글에서는 스탯캐스트 자료를 이용해 둘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비교 방법

비교할 항목은 구속, 회전수, 공을 던지는 높이(타점, 릴리즈 포인트 z좌표), 익스텐션이다. 공의 속도와 회전수, 공을 던지는 높이, 공을 끌고 나오는 정도는 타자가 느끼는 구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직구 계열인 포심과 투심에 대해서만 비교했으며, 스탯캐스트에서 와인드업/스트레치 포지션 구분을 제공하지 않아 편의상 무주자(와인드업)/유주자(스트레치)로 구분했다. 아래는 포심을 예시로 실제로 어떻게 분석했는지 나타낸 것이며, 투심도 같은 방법으로 구할 수 있다. (링크에서 대타와 非대타의 타격 성적을 비교한 방법을 차용한 것이다)

 

1. 2018년 메이저리그 투수 중 포심을 와인드업과 스트레치 포지션에서 모두 30구 이상 던진 투수를 고른다. 총 531명이 있었다. 투심의 경우는 196명이었다.

2. 531명의 투수 각각에 대해 주자가 없을 때(와인드업)와 없을 때(스트레치)의 평균 구속, 타점, 익스텐션, 회전수를 구한다. 예를 들면 류현진의 주자가 없을 때 평균 구속, 있을 때의 평균 구속, 없을 때의 타점, 있을 때의 타점 등등을 각각 구하는 식이다. 

3. 투수 각각에 대해 주자가 없을 때의 평균에서 있을 때의 평균을 뺀다. 그렇게 하면 구속, 타점, 익스텐션, 회전수에 대해 각각 531개의 차이값이 나오게 된다.

4. 3에서 구한 차이값에 대해, 각 투수의 주자가 없을 때의 포심 투구수와 있을 때의 포심 투구수 중 더 작은 값으로 가중평균한다.

결과는 표와 같다.

< 주자 없을 때와 있을 때 포심/투심의 구속, 타점, 익스텐션, 회전수 차이 >

직접 와인드업/스트레치 포지션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주자 유무로 투구자세를 간접적으로 판단했으므로 주자 유무가 투구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를 감안하더라도 특별히 다른 조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작았다. 0.1km/h 수준의 구속 차이, mm 단위의 타점 차이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 포심의 와인드업/스트레치 포지션 구속 산점도 >

위 산점도는 선수별로 와인드업과 스트레치 포지션에서의 구속(km/h)을 표시한 것으로, 어느 한쪽이 일관되게 높거나 낮은 양상은 없었다. 포심의 구속에 대해서만 표시했지만 다른 항목도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구위 측면에서는 이렇다 할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 포심 전체 평균구속과 투구자세별 포심 구속 차이 산점도 >

평균 구속이 빠르거나 느릴 때 투구자세별 구속 차이에서 경향성이 보이는지도 관찰해 보았으나 포심, 투심 모두 아무 관계도 확인되지 않았다.

 

물론 와인드업을 없애는 문제는 단순히 구속, 회전수 같은 몇 가지 숫자로만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치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디셉션(숨김) 효과나 타이밍 교란 효과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요인이다. 투수의 심리적 측면도 무시하기 어렵다.

약간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 야구의 미적인 측면에서도 와인드업은 중요한 요소다. 어떤 선수들은 그 와인드업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최동원, 박찬호, 김광현 같은 선수들이 모두 스트레치 포지션으로만 던졌다면 야구는 덜 아름다웠을 것이다.

와인드업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에 따라 꼭 고집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구위의 측면에서는 와인드업을 하든 말든 거의 차이가 없다. 만약 투구 자세를 일정하게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투수가 있다면 스트레치 포지션에만 집중해 보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 될지 모른다.

 

야구공작소 오연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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