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타저 정말 여기까지 의도했나

(Image by Kate Hansen from Pixabay)

[야구공작소 박기태] 거두절미하고 바로 차트를 보자.

2개월 전 필자는 타고투저의 끝을 확실하게 말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시즌이 반환점을 돌기 직전인 지금은 ‘정말로 끝난 것 같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최근에는 살짝 꼬리를 말고 내려가고 있긴 하지만,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두 달 사이 BABIP가 상승하기는 했다.

BABIP의 상승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현상이다. ‘반발력이 줄어든 공인구 때문에 BABIP가 감소했다’던 일부 해석과는 배치된다. 그렇다면 새 공인구는 효과를 보지 못한 걸까?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공인구 효과는 리그 전반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심각한 변화는 장타율 쪽에서 드러났다. 타율은 2개월 전보다 다소 상승했다. 하지만 장타율은 타율을 따라 상승하는 듯하더니 다시 하락세를 그려 2개월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한마디로 말해 장타가 사라졌다. 가장 큰 이유는 장타 중에서도 타격의 꽃, 홈런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6월 19일까지 2019시즌 HR%(타석당 홈런 비율)는 1.85%를 기록하고 있다. HR%가 마지막으로 2% 미만을 기록한 건 타고투저 바람이 불기 직전이던 2013년이다. 128경기 체제였던 당시 홈런왕은 37개를 친 박병호였고, 2위는 29개의 최형우였다.

그보다 1년 전인 2012년에는 (또) 박병호가 31개 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고, 최정이 26개로 2위에 올랐다. 이 해 HR%는 KBO리그 38년 역사에서 5번째로 낮은 1.52%였다. 1993년 이후 가장 낮은 기록이었다.

2013년 리그에는 30홈런 타자가 한 명밖에 없고, 홈런(798)보다 병살타(912)가 많았다. KBO리그는 6년 만에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있다.


역사 되짚기: 마운드가 무너지던 그 해, 2014년

2011년부터 심각한 홈런과 득점의 빈곤에 시달린 KBO리그는 2014년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1명 늘렸고, 외국인 타자 보유를 사실상 의무화했다. 이에 에릭 테임즈를 비롯한 외국인 타자의 리그 정복이 시작됐다. 그런데 동시에 발맞춰 한국 타자들의 타격 성적도 상승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하루아침에 3할 타자가 발에 챌 만큼 늘어났고, 1년 만에 홈런 숫자가 50%나 늘어났다. 갑자기 투수들이 바보가 됐기 때문일까? 노력을 등한시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류현진이 2012년을 끝으로 미국으로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말했다. 이제는 상황이 반대가 됐다. 타자들이 그동안 반발력 높은 공인구에 기대어 성적을 부풀려왔을 뿐이라는 반응이 넘실댄다. 반대로 고득점 행진이 끝난 지금에 와서, 5년 전 추락한 투수의 위상을 가엾게 여기는 이들도 보인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비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투수가 잘 던지면 타자 탓, 타자가 잘 치면 투수 탓 하는 꼴이다.

사실 BABIP만 추적해도 2014년 즈음 벌어진 일이 기형적인 현상이란 게 바로 드러난다.

올해 BABIP 하락 폭은 KBO 38년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크다. 1년 만에 0.016이 떨어졌다. 이만큼 크게 BABIP가 변한 건 2000년 이후로 딱 두 차례밖에 없었다.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가면서 0.014가 늘었고, 2013년에서 2014년이 되면서 0.016이 늘어났다.

그러니까 올해처럼 공인구를 대놓고 바꿨을 때 일어난 변화가 그 2년 동안 잇달아 벌어졌다는 얘기다. 여기에 2014년에는 홈런까지 급격히 늘어났다.

과연 평범한 수준의 투수가 이 정도로 급격한 환경 변화를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매우 가능성이 낮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때도 공인구에 손을 댄 걸까? 증거는 없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리그는 급격히 타고투저 환경으로 변모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던, 2014년 KBO리그 투수들은 그렇게 2년 만에 ‘수준 떨어지는 선수’가 됐다.


언제까지 샤워실의 바보로 남아있을 건가

앞서 살펴본 HR% 추이를 다시 보자. 지난 5년 동안의 추세를 보면 여름이 되면 홈런이 늘어나는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그 흐름을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타고투저 직전이었던 2013년의 1.78%를 따라잡을 가능성도 꽤 높다.

상상 이상으로 큰 변화다. 지난해 홈런 생산율이 역사상 최고점을 찍은 것의 반동으로, 올해 HR%는 역대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 5년간 평균과 비교해도 그렇다.

시즌 전 SK 와이번스는 홈런이 20%까지 줄어들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현실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 1년 새 홈런은 40%나 줄어들었다. 직전 5년 평균과 비교해도 30% 넘게 줄어들었다.

덕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문자 그대로 ‘역대급’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6월 19일까지 경기당 득점은 4.66점. 1년 전의 5.55점과 비교했을 때 0.89점, 1점 가까이 줄어들었다. 절댓값만 놓고 보면 1993년, 1999년, 2014년의 뒤를 이어 리그 역사상 4번째로 큰 폭의 변화다.

‘샤워실의 바보’라는 비유가 있다. 이 바보는 샤워실에 들어가서 물을 틀고, 찬물이 나오자 당황해서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완전히 돌린다. 물이 뜨거워지면 수도꼭지를 완전히 반대로 돌린다. 변화는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걸 모르는 바보는 극단적인 선택만을 반복한다. 지금 KBO리그가 딱 이 모양이다. 의도하지 않았다면 한심하고, 예상하지 못했다면 멍청한 일이다. 섣부른 결정 때문에 리그 환경이 급격히 달라졌고, 기록이 달라졌다.

문제는 단순히 기록이 달라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현실적인 문제도 뒤따른다. 타격 기록으로 옵션 계약을 맺은 선수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반대로 투수 성적으로 옵션 계약을 맺은 구단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리그 사무국이 손해 배상을 해야 할까? 반대로 이득을 본 주체도 있으니 쉽지 않은 문제다.

앞서 투고타저 얘기를 했지만 그 옆을 둘러보면 비슷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괜히 3피트 규정에 손을 댔다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어설프게 메이저리그를 따라서 홈 충돌 규칙을 도입했지만 아직도 규칙 해석이 엇갈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거나, 고치지도 못하고 방치하기만 계속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몇 년 새 공인구 규격이 바뀌고, 규정이 바뀌었다. 지금도 수비 시프트 금지, 피치 클락 도입 등 급진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선행 준비과정을 착실히 밟거나, 빠른 피드백을 통해 안정적인 정책 시행을 추구한다. 홈 충돌 규칙 도입 당시에는 적극적인 개입으로 1년 만에 논란이 완전히 사라졌다.

KBO 리그는 왜 이렇게 하지 못하나. 왜 부끄러움은 팬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하는가. 언제까지 샤워실의 바보로 남아있을 건가.

에디터=야구공작소 양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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