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유감(有感)] 있는 것부터 잘 하자

[야구공작소 오연우]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책만 사 놓고 공부는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각종 문제집, 참고서를 구비해 놓고 커리큘럼 꼼꼼하게 따져서 인터넷 강의까지 결제한 뒤 막상 공부는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있는 거나 잘 하지’

 

최근 수년 동안 KBO의 행태도 이와 같다. 있는 규정도 잘 지키지 못하면서 무분별하게 땜질만 반복하고 있다. MLB의 바뀐 규정을 들여올 때도 과연 충분한 생각을 하고 들여온 것인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올해부터 실시된 3피트 라인 규정 ‘엄격 적용’을 보자. 애당초 이 규정을 갑자기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것부터 석연치 않았는데 현재 적용되는 양상을 보면 ‘엄격 적용’이 아니라 ‘잘못 적용’하고 있다.

<2019 야구규칙 6.01>

잘못 적용되는 부분은 크게 2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실제로 수비에 방해가 되었는지를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선만 넘으면 아웃을 주고 있는 점이다. ‘야수를 방해하였다고 심판이 판단하였을 경우’라는 문구에 명시된 판단의 의무를 회피한 것이다.

둘째는 파울 라인의 안쪽(왼쪽)으로 달리는 경우는 전부 아웃을 선언하면서 3피트 라인의 바깥쪽(오른쪽)으로 달리는 경우는 무시하는 것이다. 사실 외야 안타가 나오면 대부분 홈~1루를 호를 그리면서 주루하게 된다. 방해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선만 넘으면 아웃을 준다는 새로운 원칙을 관철하자면 모두 아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올해 함께 들어온 2루 슬라이딩 규칙(6.01(j))은 어떤가. 우선 이것도 특별한 고민 끝에 도입했다기보다는 올해부터 규칙집을 미국식으로 고치면서 미국 규칙집에 포함되어 있던 2루 슬라이딩 규칙까지 덩달아 ‘도입되어 버린’ 것에 가까워 보인다.

어쨌든 부상 방지라는 도입 취지는 좋다. 그러나 이 규칙이 기존 규칙과 다른 새로운 사항을 제시하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규칙의 골자는 ‘정당한 슬라이딩’을 하고 수비 방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규칙이 생기기 전에도 6.01(a)(6)에서는 “주자가 병살을 하지 못하도록 명백한 고의로 타구를 방해하거나 타구를 처리하고 있는 야수를 방해하였다고 심판원이 판단하였을 때 심판원은 방해한 주자에게 아웃을 선고하고 타자주자에게도 동료선수의 방해에 의하여 아웃을 선고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기존 규칙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2016년에 도입한 홈플레이트 충돌 규칙(6.01(i))도 마찬가지다. 이미 규칙집에 같은 내용이 있는데 굳이 홈플레이트 버전으로 따로 만든 것이다. 홈플레이트 충돌 규칙의 내용 및 그와 똑같은 내용이 언급된 규칙집의 다른 부분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물론 위 두 규칙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있는 규칙만 제대로 적용해도 될 문제를 자꾸 새 규칙을 만들어서 해결하려 하니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경기 스피드업 규정’을 보자. KBO는 2015년 처음으로 5개 항목으로 이뤄진 스피드업 규정을 발표했고, 지난 4년간 수정, 보완을 거친 올해 스피드업 규정은 이제 스크롤을 내려 가며 한참을 읽어야 될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이 중에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건 얼마나 될까?

가령 타석 이탈 금지 규정은 어떤가? 부적절한 타석 이탈 시 부과되는 20만 원의 벌금이 2015년 5월 1일을 마지막으로 4년째 부과되지 않고 있는 것은 모든 선수가 한마음 한뜻으로 타석을 이탈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KBO가 단속하지 않아서일까? 4사구 시 1루까지 뛰어가는 규정은? 공수교대 시 전력질주하는 규정은 또 어떤가? ‘로진을 집어들고 털어내는 행동을 하면 경고’라는 규정의 존재를 알았던 선수는 있을까?

규정이 있어도 실행하지 않으니 실효성은 둘째 문제긴 하지만, 스피드업과 무슨 관련이 있나 싶은 규정도 많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투구에 맞으면 사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규정이나 타격용 스프레이는 프레온 가스가 없는 것만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스피드업 규정에 왜 들어가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항목 개수를 채우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제발 새로 뭔가 하려 하지 말고, 있는 것부터 잘 하자.

 

에디터 = 야구공작소 양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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