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마구가 보여준 프로야구

[야구공작소 오연우] “연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 햄릿 3막 2장

연극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야구 게임은 프로야구를 비추는 거울이다. 프로야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야구 게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프로야구의 모습을 반영한다.

온라인 야구 게임 마구마구는 2006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특유의 단순함과 프로야구 퍼빌리시티 권리를 앞세워 승승장구했다. 지금까지 많은 야구 게임이 명멸해 갔지만 마구마구만큼은 야구 게임의 대명사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2010년에는 프로야구 네이밍 스폰서를 맡았을 정도로 아직 마구마구의 명성에 비견할 만한 야구 게임은 등장하지 않았다.

출시 13년이 지난 현재 마구마구를 돌아보면 마구마구는 프로야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일 뿐 아니라 미래를 보여주는 수정구이기도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더라도 마구마구는 일찍부터 오늘날 프로야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수비 시프트

일반적으로 현재와 같은 수비 시프트의 시초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클리블랜드 감독 루 부드로가 테드 윌리엄스를 상대로 펼친 ‘부드로 시프트’가 시작이었다. 하지만 수비 시프트가 일반적인 작전으로 쓰인 것은 70년이 지난 2010년대부터다. 그전까지는 현재와 같은 체계적인 시프트, 특히 좌우 타자에 따른 극단적인 시프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마구마구는 2006년 3월 9일 정식 출시된 뒤 같은 해 9월 20일에 시행한 업데이트에서 수비 시프트 기능을 도입했다. 마구마구의 수비 시프트는 단순히 있기만 한 기능이 아니라 수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시프트 여부에 따라 잡을 수 있는 타구의 범위가 크게 달라지며, 홈런 타자가 나오면 시프트로 후진수비를 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업데이트 당시 정보>

2006년이면 수비 시프트커녕 OPS 정도의 간단한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개념도 생소하던 시기다. 이런 시기에 벌써 시프트를 도입했다는 것, 그리고 단순히 전후 시프트뿐 아니라 좌우 시프트까지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마구마구의 발빠른 움직임을 볼 수 있다.

하이 패스트볼

투수에게 ‘바깥쪽 낮은 코스로 던지라’는 격언은 아주 오랫동안 진리로 받아들여져 왔다. 직관적으로도 바깥쪽 낮은 코스는 배트와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안타를 치기도 어렵고 장타도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는 하이 패스트볼의 효용성이 밝혀지면서 리그 전체적으로 하이 패스트볼의 구사 비율이 높아졌다. 패스트볼을 높게 던졌을 때 헛스윙률이 더 높을 뿐 아니라 직관과 달리 피안타율도 낮고 장타도 더 적게 허용하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MLB뿐 아니라 KBO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투수여 하이 패스트볼을 던져라)

마구마구에서는 출시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하이 패스트볼이 널리 쓰이고 있다. 헛스윙이 많이 유도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마구마구에서는 하이 패스트볼에 별다른 페널티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일반적인 야구 게임의 설정을 알면 놀랄 수밖에 없다. 당시 다른 야구 게임은 대부분 높은 공이 더 페널티를 받도록 설정했는데 마구마구만 페널티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구마구 초기 기획을 담당한 한 관계자는, “(유저가)타이밍에 맞게 공을 배트에 맞히는 것의 난이도는 공의 높낮이와 무관하다. 그러나 다른 게임은 대부분 높은 코스의 공이 페널티를 받도록 설정되어 있는 반면 마구마구에서는 높은 공을 비교적 ‘강하게’ 설정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박찬호의 위력적인 라이징 패스트볼을 떠올리고 마구마구 내에서 유저들이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타 게임과 달리 하이 패스트볼의 BABIP에 페널티를 주지 않은 것이다.

많은 객관적 자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하이 패스트볼의 효용성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무려 13년 전에, 다른 야구 게임들과는 정반대로 하이 패스트볼의 가치를 알아본 마구마구의 초기 개발진에게는 혜안이 있었다고 하겠다.

대홈런시대

지난 2~3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홈런의 폭발적 증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총 홈런 개수는 2015년 4909개에서 2016년 5610개, 2017년 6105개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난해는 5585개로 다소 주춤했다고 하나 이조차도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홈런 증가 현상에 대해 뜬공 혁명, 공인구 변화 등 몇 가지 가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어떤 것도 완벽하지는 않다.

<연도별 리그 홈런>

뜬공 혁명은 타구 발사 각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선수에 따라서는 타구 발사 각도를 높이는 것으로 홈런 개수를 크게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메이저리그의 어퍼스윙 전성시대) 많은 선수들이 타구 각도를 높이며 혁명에 동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뜬공 혁명이 홈런 증가의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뜬공혁명이라는 ‘시장의 우상’) 여전히 유력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공인구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5월 25일에 발간된 메이저리그 홈런 비율 연구 위원회 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다.(MLB 홈런 조사 보고서의 물리학 이해하기) 이에 따르면 2015년부터 공인구의 항력 계수가 감소하면서 공기 저항이 감소해 비거리가 늘어나고 있다. 다만 항력 계수가 감소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마구마구는 이미 유저들 사이에서 ‘뻥구뻥구’(홈런타자를 ‘뻥타자’라고 부르는 데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이름으로 불린 지 10년이 넘었다. 초창기에는 연속 안타로 득점하는 팀도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었으나 점차 게임 환경이 홈런 팀에게 유리해진 결과 이제는 ‘뻥팀’이 아니면 좀처럼 승리하기 어렵다.

크게 2가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게임 전체적으로 파워 수치가 높은 타자가 많아졌고 그에 따라 라인업 전체를 홈런 타자로 채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홈런은 가장 효과적인 득점 루트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누구나 홈런 타자 9명으로 라인업을 채우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홈런 타자가 늘어난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또한 게임 내 수비수의 수비력이 너무 강해지면서 수비의 영향을 받지 않는 홈런을 치는 것이 중요해졌다. 2009년 2월에 ‘하이점프캐치’라는 스킬이 도입된 것이 결정타로, 이 스킬로 인해 기존에 내야-외야 사이에 떨어지던 안타의 상당수가 내야수에게 잡히게 되어 연속 안타로 다득점을 노리는 것이 훨씬 어려워졌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수비 시프트가 증가함에 따라 수비 효율이 높아진 것과 비슷하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마구마구는 메이저리그보다 6~7년 먼저 대홈런시대를 겪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불펜야구

지난해 메이저리그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템파베이가 주도한 ‘오프너’와 ‘불펜 데이’였다. 오프너와 불펜 데이는 긴 이닝을 막는 ‘선발 역할’을 하는 선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불펜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고 그 중요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오프너와 불펜 데이는 지난해에야 등장했지만 전체 투구 이닝에서 불펜 투수가 차지하는 이닝은 이전부터 꾸준히 증가해 왔다. 선발투수는 적은 이닝만을 던지게 하고 많은 불펜 투수들을 동원해 전력투구시키는 전략을 취하는 팀들이 늘어났다. 대홈런시대 속에서 홈런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삼진을 늘리려 한 것이다. (새로 만난 세계, ‘불펜 대혁명’)


<연도별 불펜 이닝 비율>

이런 현상 역시 메이저리그보다 몇 년이나 일찍 홈런 시대를 맞았던 마구마구에서 먼저 발생했다. 상대 라인업의 대부분이 홈런 타자라면 아예 배트에 공이 스치지도 못하게 하는 게 최선이다. 마구마구 초창기에는 선발투수가 가급적 길게 던지기 위해 완급조절을 하며 던졌다면, 홈런 시대가 온 뒤로는 초반부터 선발투수가 전력투구를 한 뒤 이르면 6회부터라도 특급 불펜들을 차례로 등판시키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유저들이 환경에 적응해 진화한 결과다.

피치 터널

마구마구에서 한때 악명 높았던 투구 조합으로 ‘써싱’이라는 것이 있었다. 서클 체인지업과 싱커를 묶어서 이르는 말로, 게임 내에서 두 구종의 궤도가 처음에는 비슷하다가 마지막에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여 이 두 구종의 조합이 많은 헛스윙을 끌어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비슷하게 쌍방울 성영재에게 장착된 언더핸드 포크볼도 포심과 거의 비슷한 궤도를 보이다가 마지막에 살짝 떨어져 헛스윙을 유도해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런 개념이 ‘피치 터널’이라는 개념으로 보다 구체화되었다. 일반적으로 타자는 투구를 끝까지 보고 치는 게 아니라 투구가 날아오는 중간까지의 궤적만 본 뒤 이후의 궤적을 상상해서 스윙하게 된다. 따라서 투수가 여러 구종을 던질 때, 그 구종들이 오랫동안 비슷한 궤적을 유지할 수 있다면 타자의 판단 능력을 교란시켜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다. 이렇게 구종들이 비슷한 궤적을 유지하는 구간을 ‘피치 터널’이라고 부르며 피치 터널이 길수록 타자는 투구를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마구마구에서 ‘써싱’과 ‘포심-언더핸드 포크’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은 피치 터널이 유독 길게 설계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실제로도 서클 체인지업과 싱커는 함께 던지는 것이 권장되고 있다. 물론 마구마구 개발 당시에는 피치 터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지만 개발진이 피치 터널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의도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지금까지 마구마구는 놀라울 정도로 미래의 프로야구상을 잘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마구마구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줄지 기대해 본다.

에디터 = 야구공작소 송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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