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바티-엔카의 마지막’ 토론토 블루제이스

팬그래프 시즌 예상 성적: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2위(83.5승 78.5패)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2위(89승 73패), 챔피언십 시리즈 1승 4패 탈락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임선규] 16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컸다. 월드시리즈 패권에 도전할 안정적인 전력을 갖추었다는 평가였다. ESPN의 전문가 31인 중 절반이 넘는 19명이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지구 우승을 점쳤으며, 나머지 12명 중 6명도 블루제이스의 와일드카드 획득을 예상했다. 월드시리즈 우승팀에 대한 예상에서는 4표를 얻어 시카고 컵스에 이어 2번째로 많은 표를 획득했다. 이런 후한 평가의 가장 큰 이유는 강력한 타선에 있었다. 15시즌 그들은 총 891점을 내며 2위인 뉴욕 양키스(764점)보다 130점을 더 내는 막강한 화력을 뽐냈다. 팀 wRC+(조정 득점 생산력)은 117이었는데, 16시즌에 대입한다면 타선의 9명이 평균적으로 버스터 포지와 비슷한 생산성을 보여주었다는 셈이 된다. 토론토는 이런 강력했던 타선에서 전력의 큰 변화 없이 2016시즌 개막전을 맞이했다.

그러나 시즌 뚜껑을 열어보고 나니 타선의 생산력은 예년만 못했다. 호세 바티스타는 부상에 신음하며 최악의 부진을 겪었고, 트로이 툴로위츠키는 과거 산에서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해 깜짝 활약을 펼쳤던 1루수 크리스 콜라벨로는 금지약물이 적발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시즌 막판 분위기 반전을 위해 데려온 멜빈 업튼은 1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상황을 악화시켰다. 결국, 올 시즌 토론토는 지난해보다 100점 이상 낮은 759득점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오히려 팀을 지탱시킨 것은 타선이 아닌 안정적인 선발 투수진이었다. 데이빗 프라이스의 75% 역할을 기대하며 데려온 J.A. 햅은 20승 투수가 되며 사이영상 투표에서 표를 획득했다. 2년 2,60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맺으면서도 미심쩍은 눈길을 받았던 마르코 에스트라다는 팀의 확실한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가장 반가운 소식은 애런 산체스의 잠재력 만개였다. 오랜 시간 팀의 최고 유망주였던 그는 풀타임 첫해 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다. 다른 2명인 R.A. 디키와 마커스 스트로만은 퍼포먼스에서는 기대를 밑돌았지만 이닝만큼은 꾸준히 소화했다.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었던 이들 다섯 명은 시즌 막판까지 기복 없는 모습을 보이며 팀의 162경기 중 152경기를 담당해주었다. 이들의 활약은 기대치보다 부진했던 타선의 아쉬움을 상쇄해주었다.

 

최고의 선수 – 조쉬 도날드슨, 로베르토 오수나

15년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선수였던 조쉬 도날드슨은 올 시즌도 건재했다. 타율과 장타율 면에서는 다소 후퇴했지만, 볼넷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10.9% -> 15.6%). 결과적으로 0.284/0.404/0.549 37홈런으로 지난해와 거의 비슷한 생산성(wRC+154 -> 155)을 유지했다. 굳이 옥에 티를 꼽자면 9월 겪은 엉덩이 부상이 아쉬웠다. 부상자 명단에 올라야 할 큰 부상이었지만 치열한 순위 경쟁중인 팀의 사정으로 인해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지명타자 등으로 억지로 경기에 출장했지만 9월 0.232/0.404/0.415, 10월 0.125/0.222/0.125로 크게 부진했다. 8월까지의 활약으로는 MVP 2연패도 노려볼 수 있는 성적이었다는 점에서 팬들에겐 아쉬움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최연소 마무리 로베르토 오수나의 활약도 돋보였다. 스프링캠프에서 드류 스토렌과의 경쟁에서 이겨내며 팀의 마무리 투수를 차지한 그는 2.68의 평균 자책점과 36개의 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뒷문을 지켜냈다. 조금 더 세밀한 돋보기로 바라보더라도 그의 활약은 인상적이다. 레버리지 상황에 대한 가중치를 두어 불펜 투수 가치 평가에 최적화된 WPA(Win Probability Added)에 따르면, 오수나가 기록한 수치는 자크 브리튼, 앤드류 밀러, 샘 다이슨에 이은 리그 4위에 해당한다. 불펜 투수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최근의 메이저리그 분위기 속에서 최저 연봉을 받는 젊은 마무리 투수의 활약은 토론토에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가장 발전한 선수 – 애런 산체스, 조 비아지니

12시즌이 끝난 뒤 앤소 폴로스 단장은 역사에 길이 남을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인 R.A. 디키를 데려오고, 트래비스 다노 / 노아 신더가드 / 윌머 베세라 등의 유망주를 내주는 트레이드였다. 디키가 아메리칸리그에서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고, 신더가드는 NL 최고의 영건이 되면서 이 트레이드는 역대 최악의 트레이드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그 속에서 누구보다 부담감이 컸을 선수는 바로 애런 산체스였다. 이 트레이드 당시 뉴욕 메츠가 요구했던 선수는 ‘노아 신더가드와 애런 산체스 중 1명‘이었다. 토론토 구단은 이 두 선수 중 애런 산체스를 더 높이 평가해 팀에 잔류시켰다.

이제 산체스는 그간 시달려온 압박감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하다. 지난해와 비교해 전반적인 제구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9이닝당 4.29개에 달했던 볼넷 비율은 2.95개라는 합리적인 수준으로 내려왔다. 제구력의 발전은 그가 던진 공의 스트라이크 존 내 분포도에서 더욱 두드러져 나타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산체스는 스트라이크 존 내에 탄착군을 형성하지 못했다. 그저 존 안에 공을 욱여넣기에 급급했을 뿐이었다. 반면 올 시즌에는 공의 2/3 이상이 스트라이크 존, 그중에서도 아래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땅볼 비율은 54.4%로, AL의 선발 투수 중 2위에 해당한다.

불안한 점이 있다면 올 시즌 갑작스레 너무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는 점이다. 포스트시즌 2경기를 포함해 203이닝을 던졌다. 2015년 던졌던 이닝이 102이닝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지나친 과부하였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25살 이하 투수들의 시즌을 조기에 마치는 ‘셧다운’이 어린 투수를 보호하는 방법의 하나로 유행하고 있다. 시류를 거스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선택은 과연 옳았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산체스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신성이었다면, 조 비아지니는 지난해 룰5 드래프트가 낳은 최고의 스타다. 15년 샌프란시스코 더블 A에서 뛰던 선발 투수였던 그는 불펜에서 자신의 천직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평균 시속 90마일 전후였던 패스트볼의 구속이 5m/h 가까이 뛰어 올랐고, 변화구인 슬라이더의 구속 또한 시속 90마일에 근접했다. 그 결과 9이닝당 볼넷 비율과 홈런 비율은 지난해와 큰 차이 없이 유지하면서(BB/9 2.35 -> 2.53, HR/9 0.35 -> 0.40), 9이닝당 삼진 비율은 크게 높이는 데 성공했다 (5.80 -> 8.25).

 

가장 실망스러웠던 선수 – 호세 바티스타, 트로이 툴로위츠키

호세 바티스타에게 올 시즌은 굉장히 중요했다. 길고 길었던 염가계약을 끝내고 FA 자격을 얻게 되는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부진은 팀에게나 개인에게나 크나큰 불행이었다. 0.234/0.366/0.452 wRC+ 122, 2010년 이래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말았다. 그래도 ‘최악’ 수준은 면했던 타격에 비해 수비는 끔찍했다. 400타석 이상 출장한 선수 중 바티스타보다 더 낮은 수비 수치를 기록한 우익수는 볼티모어의 마크 트럼보 단 한 명이었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1억 달러의 계약을 꿈꿨던 37살의 노장 호세 바티스타에게 시장의 관심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콜로라도의 상징과 같은 유격수였던 트로이 툴로위츠키의 모습 역시 실망스러웠다. 0.254/0.318/0.443 24홈런으로 과거의 명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기록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끔찍했던 4월 이후로 성적이 서서히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툴로위츠키 본인은 4~5월 타격 자세 변경을 시도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해명했다. 원래의 타격 자세로 돌아간 것이 시즌 중반 이후 반등의 계기가 되었던 만큼, 기세를 이어나간다면 실망스러웠던 올해와는 다른 내년의 모습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주목할만한 선수 – 데본 트래비스

2013년 겨울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만성적인 골칫거리였던 2루 자리를 보강하기 위한 카드를 꺼내 든다. 당시 최고 유망주였던 쥬릭슨 프로파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이안 킨슬러를 시장에 내놓았던 텍사스 레인저스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호세 바티스타 or 에드윈 엔카나시온 – 이안 킨슬러의 트레이드는 임박해 보였다. 하지만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던 이안 킨슬러는 이적에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프린스 필더와 맞트레이드되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건너가게 되었다. 토론토의 2루수 보강은 또다시 요원한듯했다.

킨슬러의 트레이드 거부권 행사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안 킨슬러가 이적 후 맹활약을 펼치면서 디트로이트 팜의 최고 유망주였던 데본 트래비스의 자리가 애매해져 버린 것. 1년 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결국 중견수 앤서니 고즈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그를 영입하기에 이른다.

데본 트래비스는 이안 킨슬러 영입 실패의 아쉬움을 달래줄 적임자로 보인다. 지난 2년간 163경기에서 0.301/0.342/0.469 19홈런과 함께 4.8의 fWAR(승리기여도)를 기록했다. 139타석 당 1 fWAR을 기록했는데, 지난 2년간 400타석 이상을 뛴 50명의 2루수 중 그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인 2루수는 호세 알투베, 이안 킨슬러, 제이슨 킵니스 단 3명이었다. 심지어 올 시즌 MVP급 활약을 펼친 다니엘 머피, 연봉 2,400만 달러의 로빈슨 카노, 40홈런 2루수 브라이언 도지어까지도 모두 그보다 아래에 있었다.

토론토는 5월 24일까지 22승 25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최하위에 처져 있었다. 하지만 이후 69경기에서 43승 26패를 기록하며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비밀의 열쇠는 5월 25일이라는 날에 있었다. 바로 데본 트래비스가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와 라인업에 합류했던 바로 그 시점이다.

 

총평

올 시즌이야말로 토론토에게는 ‘월드시리즈 우승’의 적기였다. 팀의 주포 에드윈 엔카나시온과 호세 바티스타의 계약이 끝나는 마지막 해였기 때문이다. 토론토는 그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 여기에 알짜배기 활약을 펼쳤던 마이클 손더스(0.253/0.338/0.478 24홈런)까지 이탈해버렸다. 이대로 가다간 멜빈 업튼 – 케빈 필라 – 에제키엘 카레라로 짜인 외야진을 봐야 할 판국이다. 오프시즌 라우더스 구리엘(7년 2,200만 달러)와 켄드리 모랄레스(3년 3,300만 달러), 스티브 피어스(2년 1,250만 달러)를 발 빠르게 영입했고, 마이너리그 최고의 1루 유망주로 떠오른 로우디 텔레즈(AA 0.297/0.387/0.530)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준비를 마쳤지만, 이들이 떠난 선수들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붙는다.

그래도 안정적인 선발 투수진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 너클볼러 R.A. 디키가 이탈했지만, 시즌 막판 영입했던 프란시스코 리리아노가 그 공백을 대체할 수 있다. 시즌 막판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트레이드되어 온 리리아노는 찰떡궁합의 포수 러셀 마틴과 재회한 이후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16 @피츠버그: 113.2이닝 ERA 5.46, 16 @토론토: 49.1이닝 ERA 2.92). 여기에 풀타임 2년 차에 접어들 애런 산체스와 마커스 스트로만이 완숙미를 더한다면, 토론토는 올 해보다 한 층 더 발전한 선발 투수진을 구축할 예정이다. 일단 토론토는 전면적인 리빌딩 대신 한 해 더 ‘GO’를 외치기로 했다. 강력한 투수진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도전하는 블루 제이스의 2017시즌이 기다려진다.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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