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다시 DS에서 무릎을 꿇다, 워싱턴 내셔널스

2016 팬그래프 예상 성적: 90승 72패 (NL 동부 2위)
2016 시즌 최종 성적: 95승 67패 (NL 동부 1위) ∙ NLDS 진출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김태근] 드디어 제 모습을 찾았다. 주축 선수들의 부진∙부상, 하퍼와 파펠본의 난투극, 맷 윌리엄스 감독의 지도력 부재에 83승 79패라는 실망스러운 2015년을 보냈던 워싱턴은 올해 95승 67패로 정상궤도에 복귀했다.

시즌 전 영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워싱턴은 제이슨 헤이워드, 벤 조브리스트,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등에 적극적으로 대시했으나 그들은 모두 워싱턴을 외면했다. 결국, 워싱턴은 다니엘 머피와 3년 계약을 맺고, 벤 르비어를 트레이드 해오는 데 그쳤다(다니엘 머피가 워싱턴의 쓰린 속을 달래주긴 했지만).

하지만 리바운딩의 일등 공신은 맷 윌리엄스 경질 이후 임명된 ‘정규시즌 마스터’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었다. 베이커 감독은 ‘2015년 최고의 선수(하퍼)’가 극심한 부진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을 다시 지구 우승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다만 이번 가을야구에서도 베이커 감독이 일리미네이션 게임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2승 1패 후 2연패 탈락).

 

MVP: 맥스 슈어저 & 다니엘 머피

워싱턴과 7년 2억 1,000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 두 번째 시즌을 보낸 슈어저는 돈이 아깝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올 시즌 슈어저는 선발등판, 이닝, 다승, 탈삼진에서 내셔널리그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돋보인 것은 탈삼진이었다. 슈어저의 284탈삼진은 내셔널리그를 넘어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의 기록이다. K/9은 ML 전체 3위(11.19)이지만, 슈어저는 1위 호세 페르난데스, 2위 로비 레이보다 30~40이닝을 더 던졌다.

슈어저가 가장 빛난 것은 5월 11일(현지 시각)이었다. 그는 이날 전 소속팀인 디트로이트를 만나 9이닝 2실점 완투승을 거뒀다. 이는 슈어저 생애 최초의 20K 경기이기도 했다(공교롭게도 상대 선발은 작년까지 팀 동료였던 조던 짐머맨). 한 경기에 20K가 나온 것은 MLB 역대 6번째 기록이며, 9이닝 완투로 한정하면 5번째이다(최근 2001년 랜디 존슨).

리그에서 가장 꾸준하고 압도적이었던 투수에게 사이영상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슈어저는 AL 사이영상을 받았던 2013년 이후 처음으로 20승 – 2점대 ERA – 200이닝 – 200K 시즌을 보내며 NL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이로서 그는 MLB 역대 6번째로 양대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투수가 되었다.

슈어저는 5.6의 fWAR로 팀내 투수 1위였다. 그렇다면 타자 1위는 누구였을까? 프리시즌엔 많은 사람들이 브라이스 하퍼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 시즌 그 주인공은 3년 3,750만 달러에 이적한 다니엘 머피였다(fWAR 5.5).

작년 가을에서의 모습(14G 7홈런 11타점)으로 인해 머피가 업그레이드됐다고 짐작한 사람은 있었지만 설마 그가 올 시즌 MVP 후보가 되리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2016년 NL MVP 2위). 커리어를 통틀어 20홈런은커녕 두 자릿수 홈런 시즌도 3번에 불과했던 머피는 올 시즌에만 25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장타율도 생애 처음으로 6할에 육박하는 5할 시즌을 만들어냈다(장타율 .595).

머피가 파워뿐 아니라 정확도까지 완벽해졌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시즌 초반부터 4할에 가까운 타율을 유지한 머피는 그 기세를 시즌 끝까지 이어가면서 .347의 고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후반기 결장이 잦아지면서 D.J. 르메이휴에게 1리 차이로 타격왕 타이틀을 뺏기긴 했지만, 메이저리그 전체 타율 2위의 기록이었다. 정확도와 파워가 적절히 조화된 머피는 ML 전체 1위에 해당하는 47개의 2루타를 뽑아내면서 최고의 갭히터로 인정받았다.

브라이스 하퍼가 부침을 겪는 사이, 워싱턴 타선의 중심을 잡아준 이가 바로 머피였다. 머피는 팀의 3번 타자로서 개인 최초로 100타점 시즌을 보냈으며, 짐머맨의 부상 때는 1루수를 겸업하기도 했다. 지구 라이벌이자 자신의 친정 팀인 메츠를 상대로 19G 7홈런 21타점을 기록하며 강했던 것도 팀에겐 큰 도움이 됐다.

 

LVP: 조너선 파펠본 & 브라이스 하퍼

작년 9월 하퍼와 난투극을 벌이며 최악의 전학생으로 낙인 찍힌 조너선 파펠본은 올 시즌에는 갑작스러운 부진으로 논란이 됐다. 시작은 0.2이닝 4피안타 4실점으로 크게 무너진 7월 24일 샌디에이고전이었다. 파펠본은 이후로도 5경기 3.1이닝 9실점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19세이브, 2블론세이브, 평균자책점 2.56이라는 이전까지의 기록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파펠본은 8월에 방출돼 1년간의 워싱턴 생활을 마무리했다(워싱턴 소속 성적: 59G 3.84ERA 26세이브/5블론).

워싱턴은 파펠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최고 100마일 듀오’인 좌완 불펜 펠리페 리베로(25)와 유망주 테일러 히언(21)을 피츠버그에 보내고 마크 멜란슨을 데려왔다. 멜란슨은 트레이드 이후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였다(ERA 1.82, 17세이브/1블론). 워싱턴이 후반기에 흔들리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멜란슨 덕분이었다. 그러나 워싱턴이 가을야구에서 탈락하고 멜란슨은 시즌 직후 FA 자격을 얻으며 그의 활약은 빛을 잃게 됐다.

브라이스 하퍼도 올 시즌을 망친 선수 중 하나다. 작년 시즌 .330/.460/.649 42홈런 99타점으로 잠재력을 폭발시키면서 역대 최연소 만장일치 NL MVP까지 차지했던 하퍼는 올 시즌 초반까지는 그 기세를 이어가는 듯했다(처음 한 달: 26G 10홈런 OPS 1.021). 그러나 이후 하락세를 타면서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이후: 121G 15홈런 OPS .776).

하퍼의 부진은 타구 질이 떨어진 탓으로 보인다. 라인드라이브 비율은 타구의 질을 유추할 수 있는 지표다. 하퍼의 올 시즌 라인드라이브 비율이 그의 커리어 통산보다도 낮은 17.2%를 기록한 것은 그가 배트 중심에 공을 맞히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내야뜬공 비율의 증가(5.8%→8.9%)와 홈런/뜬공 비율의 폭락(27.3%→14.3%)으로 이어졌다.

하퍼는 최종성적 .243/.373/.441 24홈런 86타점을 기록하며 2014년 이전으로 회귀해버렸다. bWAR(9.9→1.6)과 fWAR(9.5→3.5) 또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작년에 비로소 트라웃을 넘고 ‘슈퍼탤런트 더비’에서 승리했던 하퍼였지만, 올해는 트라웃이 MVP를 타는 장면을 보면서 더욱 초라한 연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정규시즌에는 하퍼의 부진이 워싱턴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수 하나하나의 활약이 중요한 가을야구에서는 문제가 됐다. 중요할 때 한방을 쳐줘야 했던 하퍼는 포스트시즌에서 침묵하며 팀의 탈락에 일조했다(5G 타율 .258 무홈런 1타점).

 

 

다 된 죽에 코 빠뜨리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 윌슨 라모스

잘 나가다가 부상으로 시즌을 망친 두 선수가 있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윌슨 라모스 배터리이다. 2015시즌 목 부상으로 신음했던 스트라스버그는 첫 6경기를 5승 무패 ERA 2.36으로 건강하게 시작했다. 이에 워싱턴은 조던 짐머맨을 포기하며 세이브한 금액까지 얹어 스트라스버그에게 7년 1억 7,50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안겨주었다(3?4년차 옵트아웃 권리 부여). 7월 15일에는 피츠버그를 상대로 13승 무패를 달성하며 개막 후 13연승을 기록한 역대 3번째 내셔널리그 투수가 되기도 했다.

커리어하이 시즌을 향해 달려가던 스트라스버그는 8월 6일 등판을 기점으로 급격히 흔들렸다. 그는 이후 3경기에서 11.2이닝 19실점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이는 팔꿈치 통증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8월 23일 오른 팔꿈치 부상으로 DL 등재). 복귀 등판에서 9타자만 상대하고 내려간 그는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24G 15승 4패 3.60).

워싱턴에서 스트라스버그보다 ‘FA 로이드’ 효과를 맛본 선수는 포수 윌슨 라모스다. 2010년 데뷔 후 첫 5년간 .258/.301/.411의 슬래시 라인을 기록했던 라모스는, 올해 .307/.354/.496으로 오프시즌에 받은 라식수술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가장 놀라운 것은, 작년까지 5년간 61홈런을 기록한 라모스가 올 시즌 22개로 개인 홈런 커리어하이를 세운 것이다. 올 시즌 20홈런을 기록한 포수는 총 8명이었는데, 내셔널리그에서는 다저스의 야스마니 그랜달과 라모스만이 기록 달성에 성공했다(루크로이 텍사스 이적 전 13홈런). 팀 역사를 뒤져보면 라모스는 몬트리올 시절의 캐리 카터(6회) 이후 프랜차이즈 두 번째 20홈런 포수이다.

그러나 순항하던 라모스도 부상의 벽에 가로막혔다. 포스트시즌이 임박한 9월 27일, 외야수의 송구를 점프 캐치 후 착지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무릎의 전방십자인대를 다친 것이다. 시즌 아웃에 해당하는 큰 부상이었고, 결국 포스트시즌에 참가하지 못했다. 유일한 3할-20홈런 포수로서 환상적인 시즌을 보내던 윌슨 라모스의 FA 대박 꿈도 일장춘몽이 되었다.

 

기대되는 선수: 트레이 터너

올 시즌 중반 중견수 자리를 벤 르비어(wRC+ 47)에서 트레이 터너(wRC+ 147)로 바꾼 것은 워싱턴에게 ‘올해의 선택’으로 꼽힐 만 하다.

터너가 기록한 3.5의 bWAR은 구단 신인 역사상 3번째로 높은 수치이다(1위 2012년 브라이스 하퍼 5.1, 2위 1977년 안드레 도슨 3.9) 워싱턴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이후로는 하퍼 이후 처음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수치가 시즌 도중 올라와 73경기 만에 적립한 수치라는 점이다.

터너가 시즌 경기 수(162경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73경기에서 올린 성적은 13홈런 33도루 .342/.370/.567이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빠른 발로 유명했던 터너는 올해 팀 도루의 27%를 담당했고, 워싱턴의 팀 도루 순위 급등(27위→6위)에 기여했다. 가장 약한 툴로 평가받던 파워도 .225의 순장타율을 기록하며 기존의 평가를 뒤집었다.

가장 ‘센세이셔널’한 신예라고 불린 터너는 비록 신인왕이자 MVP 3위에 오른 코리 시거에 밀려 신인왕을 수상하진 못했지만, 신인왕 투표 2위에 올랐다(이로 인해 워싱턴은 2006년 미네소타 이후 처음으로 MVP∙사이영상∙신인왕 3위 이내 선수를 모두 보유한 구단이 되었다).

드래프트 당시 내야수였던 그가 콜업 직전 중견수로 전향해 빅리그에서 이처럼 대단한 적응을 보였다는 사실은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니 에스피노자가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되고 애덤 이튼이 영입된 상황에서, 터너는 본래의 포지션인 유격수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터너가 처음으로 풀타임 시즌을 보낼 2017시즌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하다.

 

마무리

시즌이 끝나고 논공행상의 시간이 다가왔다. 워싱턴은 실망스러웠던 벤 르비어(OPS .560)를 방출했고, FA자격을 취득했지만 윌슨 라모스에게 퀼리파잉 오퍼마저 제시하지 않았다. 무릎을 다쳐 시즌 초반을 뛸 수 없는 포수에게 1720만 달러의 연봉을 주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 다만 백업 포수 호세 로바톤을 1년 계약으로 잔류시켰을 뿐이다.

지오 곤잘레스는 1년 1200만 달러 옵션을 실행할 만한 활약을 했다(32G 177.1이닝 11승 11패 4.57). 에이스급으로 성장한 태너 로아크(34경기 210이닝 16승 10패 2.83)는 선발진의 중량감을 더해주었다(선발투수 ML 순위: EAR 2위, 이닝 6위, fWAR 2위).

불펜진은 메이저리그 2위에 해당하는 3.37의 ERA를 기록했다. 특히 팜에서 육성한 블레이크 트레이넨(73경기 2.28 22홀드)과 새미 솔리스(67경기 2.41 9홀드)가 외부영입 투수들인 숀 켈리(67경기 2.64 13홀드), 마크 멜란슨 등과 조화를 이루었다. 멜란슨은 이적했지만, 솔리스와 트레이넨은 앞으로 불펜에서 더 비중 있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마이클 일리치 구단주보다 고령이지만 열정과 돈 만큼은 그에 뒤지지 않는 테드 러너 구단주가 이끄는 워싱턴은 여러모로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의 디트로이트를 연상케한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조기 탈락한 것과 상관없이 내년 워싱턴의 목표는 지구 우승이다. 자이언츠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짝수 징크스’에 시달리는 중이기 때문이다(12∙14∙16 지구우승, 13∙15 PS 탈락).

워싱턴은 내년에도 물론 거센 도전과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매번 내셔널스를 견제해오는 탄탄한 전력의 메츠, 언제 컨텐더로 올라서도 이상하지 않은 마이애미, 후반기의 모습에서 부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애틀란타까지. 여기에 필라델피아도 성공적인 리빌딩을 진행 중이다. 가을야구에서의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 워싱턴이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는 NL 동부지구의 패권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번 윈터미팅에서의 ‘올인’에서 워싱턴 내셔널스의 결연함이 강하게 느껴져 온다.

출처: Fangraphs, Baseball-reference, MLB.com, Baseball Cube, Elias Sports, MLBTR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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