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짝수해 신화는 끝났지만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팬그래프 시즌 예상: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2위(87.8승 74.2패)
시즌 최종 성적: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2위(87승 75패), 디비전 시리즈 탈락(1승 3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유기호] 샌프란시스코에 또 한 번의 짝수해가 찾아왔다. 공격적인 투자를 천명한 프런트는 쿠에토와 사마자를 영입하는데 2억 2천만 달러(약 2588억 원)을 쏟아부으며 대권 도전의 닻을 올렸다. 반면 지구 라이벌 LA 다저스는 우완 에이스 잭 그레인키를 애리조나로 떠나보내고 대신 스캇 카즈미어를 영입한 것 외에는 큰 보강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도 샌프란시스코가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의 패권을 잡으리라 예상했다.

전반기까지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전반기를 메이저리그 전체 1위로 끝내며 지구 2위 다저스와의 격차도 6.5경기 차이로 벌려놓았다. 그들에게 짝수해란 ‘성적 보증수표’같이 느껴졌을 순간. 게다가 다저스에 찾아온 줄부상은 샌프란시스코에는 호재였다. 역대급 성적을 기록하던 클레이튼 커쇼 역시 등 부상으로 인해 장기 부상이 불가피했다. 시즌은 이미 끝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후반기, 거짓말 같은 반전이 찾아왔다. 샌프란시스코는 전반기와 같은 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이며 점차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가파른 추락의 핵심 원인은 뜻밖에도 불펜이었다. 왕조를 열었던 2010년부터 항상 팀의 강점으로 꼽히던 불펜은 핵심 선수들의 은퇴와 노쇠화로 예전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시즌 30블론을 저지르며 팀 역대 최고 블론 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운 순간, 브루스 보치 감독의 흰 머리가 유독 도드라져 보인 것은 단순한 느낌만은 아니었을 테다.

타선 역시 후반기 들어 침묵하는 날이 많아졌다. 시즌을 앞두고 장기 계약을 맺은 두 명의 브랜든, 벨트와 크로포드만이 꿋꿋이 타선을 지켰다. 쾌조의 출발을 보였던 헌터 펜스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했고, 지난해 깜짝 활약을 펼친 맷 더피는 스프링캠프부터 괴롭히던 아킬레스건이 문제였다. 버스터 포지는 시즌 14홈런, 0.434의 장타율로 2011년을 제외하면 데뷔 후 최악의 타격 생산성을 보이며 기대를 밑돌았다.

후반기, 불펜진과 타선이 부침을 겪으며 전반기에 벌어놓은 승률을 깎아 먹던 샌프란시스코는 심지어 와일드카드 경쟁에서도 밀려날 위기까지 겪었다. 시즌 막판 메츠에 와일드카드 1위를 내주자 와일드카드 한 자리는 차지할 거라 안심하던 팬들 사이에도 위기감이 돌았다. 위에서는 메츠가 달아나고, 아래에서는 세인트루이스가 치고 올라왔다. 하필 시즌 마지막 4연전은 매직 넘버를 지우고 지구 1위를 확정 지은 다저스. 기적적으로 다저스와의 외나무다리 승부에서 스윕을 거둔 샌프란시스코는 가까스로 가을야구 막차를 탔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가을야구, ‘가을 남자’ 매디슨 범가너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완봉승을 거두며 지난 2014년 피츠버그와의 단판 승부의 기억을 되살렸다. 기세를 한껏 올리며 만난 상대는 시카고 컵스였다. 1차전에서 팽팽한 투수전 끝에 솔로 홈런 한 방을 내주며 패배한 샌프란시스코는 이어지는 2차전에서도 사마자의 부진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3차전 연장 끝에 승리를 거둔 샌프란시스코는 4차전에서도 8회까지 5:2로 3점의 리드를 잡아내며 5차전 반전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불펜 투수들에게 아웃카운트 세 개를 잡아내기란 너무도 어려웠다. 한 이닝에만 4점을 내리 내주며 마운드가 무너진 뒤에는 현존 최고의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 올라왔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즌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다.

최고의 선수 – 자니 쿠에토

시즌 성적: 32경기 18승 5패 219.2이닝 ERA 2.79 FIP 2.96 45볼넷 198삼진 WAR 5.5

캔자스시티로 옮긴 자니 쿠에토는 어쨌든 우승 반지를 끼며 시즌을 마감했다. 캔자스시티에서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중요한 순간 두 번의 호투를 펼치며 팀에 트로피를 안겼다. 하지만 FA 시장으로 나온 쿠에토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투수 최대어 데이빗 프라이스, 잭 그레인키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커리어를 가졌지만 2015년 후반기 보여준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투구가 그 이유였다. 설상가상으로 선수 생활 내내 그를 따라다니던 내구성에 대한 물음표는 올 초여름의 경미한 팔꿈치 통증으로 더욱 커져만 갔다. 따라서 그레인키를 놓치고 쿠에토에게 6년 1억 3천만 달러(약 1535억 원)를 투자한 샌프란시스코의 선택은 모험수로 보였다.

그러나 시즌 개막 후 그에 대한 불안감은 ‘어깨춤’과 함께 사라졌다. 각종 세부 지표에서 모두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쿠에토는 커리어 첫 2점대 FIP를 거두며 범가너와 함께 리그 최강의 원투 펀치로 군림했다. 그는 탄탄한 수비와 피홈런을 억제하는 구장 효과를 바탕으로 리그 WAR 4위, ERA 5위, FIP 3위, 다승 3위, 이닝 3위에 오르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팀이 치열한 와일드카드 경쟁을 벌이던 9월 이후 5경기 4승 35.1이닝 7실점 평균자책점 1.78를 올린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또한, 쿠에토는 그의 몸 상태를 의심하는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메이저리그 최다인 다섯 차례의 완투승을 거두기도했다. 가을야구에서의 호투도 빼놓을 수 없다. NLDS 1차전, 8이닝 1실점 완투패를 기록하긴 했지만, 레스터와의 숨 막히는 투수전은 단연 올해 최고의 맞대결이라고 칭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최악의 선수 – 불펜진

시즌 성적: 478이닝 30블론(리그 1위), ERA 3.65 FIP 3.78, WAR 2.1 (리그 22위)

올해도 카시야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30세이브를 돌파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카시야가 기록한 9개의 블론세이브는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 매달 블론세이브를 저지른 것은 물론, 갈길 바쁜 9월에만 3번의 리드를 지켜내지 못하며 의도치 않게 마지막까지 와일드카드 경쟁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던 1등 공신이었다. 시즌 말미 보치 감독의 신뢰를 완전히 잃으며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온 카시야는 지속해서 불만을 나타냈다. 그에 대한 불신을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은 NLDS 4차전 9회. 3점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며 무려 5명의 투수가 올라오는 사이, 보치 감독은 31세이브를 거둔 마무리 투수에게 몸을 풀라는 지시조차 하지 않았다. 카시야는 경기 후 “내가 자이언츠에서 보였던 좋은 모습을 구단은 모두 잊은 모양”이라며 노골적으로 비판의 날을 세웠지만, 모두 자업자득이었다.

산티아고 카시야를 필두로 ‘좌타자를 잡지 못하는 좌완 스페셜리스트’가 되어버린 하비에르 로페즈는 중요할 때마다 팀의 발목을 잡았다. 리그에서 손꼽히던 셋업맨 서지오 로모 역시 4월 초, 오른쪽 팔꿈치에 부상을 입어 7월에나 복귀할 수 있었다. 로모는 우타자 상대로 본인의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앞세워 피OPS 0.674를 기록하며 여전히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좌타자와의 승부가 문제였다. 지난해 2.2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베테랑 왼손 투수 제레미 어펠트가 마음 놓고 은퇴할 수 있게 도왔던 조쉬 오시치는 4.71의 ERA로 무너지며 어펠트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다.

급하게 밀워키에서 좌완 불펜 윌 스미스를 데려왔지만 그를 영입하기 위한 대가와 이적 직후의 모습 모두 뭇 야구 팬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스미스가 그에게 기대하던 모습을 보여준 건 이미 지구 우승이 물 건너간 후였다.

주목할만한 선수 – 데릭 로

시즌 성적: 61경기 55이닝 4승 2패 1세 ERA 2.13 FIP 2.53 9볼넷 50삼진 WAR 1.1

카시야의 부진이 만든 집단 마무리 체제에서 제일 눈에 띈 선수는 셋업맨으로 활약한 데릭 로였다. 지난 2011년 9라운드로 지명된 로는 마이너리그에서도 꾸준히 불펜으로 뛰었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위력이 굉장하다는 평은 있었지만, 불펜 투수라는 포지션의 한계로 인해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강력한 구위를 바탕으로 여섯 시즌 동안 11.5개의 9이닝당 탈삼진을 기록했던 로는 올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서도 55이닝 동안 50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2.13의 평균자책점은 내셔널리그 신인 불펜 투수 중 오승환에 이어 2위 기록. 당장 오프시즌에 불펜 재편이라는 큰 숙제를 안은 샌프란시스코는 멜란슨과 함께 로가 새로운 중심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The Moment – 트레이드 데드라인

에두아르도 누네즈: 50경기 0.269/0.327/0.418 4홈런 13도루
맷 무어: 12경기 6승 5패 68.1이닝 ERA 4.08 FIP 3.53 32볼넷 69삼진
윌 스미스: 26경기 1승 1패 18.1이닝 ERA 2.95 FIP 1.78 9볼넷 26삼진

올스타 브레이크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지구 2위 다저스에 여섯 경기 반 차로 앞서 있었다. 하지만 7월 잔여 15경기에서 4승 11패로 연패의 늪에 빠지며 두 팀의 격차는 두 경기까지 좁혀졌다. 마음이 급해진 프런트는 트레이드 시장에 뛰어들었고 빅리그 데뷔를 앞둔 좌완 유망주 아달베르토 메히아와 미네소타의 3루수 에두아르도 누네즈를 교환했다.

얕은 선발진의 뎁스도 문제였다. 두 베테랑 제이크 피비와 맷 케인이 모두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하위 선발 로테이션 보강이 필요했다. 부상으로 이탈해있던 3루수 맷 더피와 2016 BA 선정 팀 내 4위 유격수 유망주 루시우스 폭스를 포함, 총 3명이 탬파베이로 이적했고 맷 무어가 오렌지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불펜 보강의 필요성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불펜 투수들의 값이 뛰어오른 트레이드 시장이었지만 윌 스미스 영입을 위해 내준 유망주 필 빅포드와 앤드류 수색은 지나치게 과한 대가였고, 이들은 황폐했던 샌프란시스코 팜에 얼마 남지 않은 재능이었다.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부랴부랴 보강에 나선 샌프란시스코 프런트를 상대로 트레이드 파트너들은 모두 호락호락하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엎친 데 덮친 격, 큰 출혈을 감수하고 데려온 선수들은 중요한 순간 기대를 외면했다. 이적생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시즌 말미에나 정상궤도에 올라 아쉬움을 곱씹게 했다.

총평

샌프란시스코에 또 한 번의 짝수해가 찾아왔지만 매코비 만 위에 새로운 우승 깃발은 걸리지 않았다. 프런트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골머리를 앓았던 불펜 재건을 위해 베테랑 마무리, 마크 멜란슨과 4년 6,200만 달러(약 724억 원)에 발 빠르게 계약을 마쳤다. 1985년생으로 내년 만 서른 둘에 접어드는 멜란슨은 구속 하락의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빼어난 제구력으로 최근 3년간 131개의 세이브를 거두었다. 통산 56.1%인 그의 높은 땅볼 비율은 샌프란시스코의 탄탄한 내야 수비와도 좋은 궁합을 보일 것이다. 프런트는 더 이상의 불펜 영입은 없다고 선언,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들 사이에서 옥석을 가릴 예정이다. 멜란슨을 중심으로 새로 판이 짜일 불펜은 올해보다 크게 나아지리라 예상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불펜뿐 아니라 타선 보강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차적인 타겟은 중견수 혹은 좌익수. 올해 13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메이저리그 전체 28위로 쳐진 장타력 보강을 위해서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양새다.

샌프란시스코의 내년 시즌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밝은 편이다. 핵심 선수들이 모두 건재한 가운데, 제일 시급한 문제였던 마무리 고민도 워싱턴과의 경쟁 끝에 해결했다. 비록 올 시즌 순위 경쟁에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적생들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하다. 거인 군단은 이제 짝수해 우승의 영광을 뒤로하고 ‘홀수해 자이언츠는 가을야구에 실패한다’는 또 하나의 징크스를 깨기 위해 뚜벅뚜벅 진군할 준비를 시작했다.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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