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엎어진 ‘돌격 앞으로’ – LA 에인절스

시즌 전 팬그래프 예상 성적: 80.7승 81.3패
시즌 최종성적: 아메리칸 서부 4위 (74승 88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박기태] 2016 시즌을 준비하는 에인절스의 목표는 간단했다. 오로지 ‘우승’. 품 안에서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야구 선수가 데뷔 후 5년째 우승을 갈망하고 있었고, 리그에서 가장 빈약한 마이너리그 사정 탓에 리빌딩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쉽지 않았다(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유망주 순위 30위).

그래서 그들은 또다시 전진했다. 취약한 내야 수비를 보강하기 위해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지닌 유격수 안드렐톤 시몬스를 트레이드로 데려왔으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3루수 데이빗 프리스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유넬 에스코바를 영입했다. 마땅한 주인이 없던 좌익수 자리에도 크레이그 젠트리와 대니얼 나바를 영입하며 플래툰 시스템 가동을 꾀했다.

그러나 그들의 진격은 5월이 지나기도 전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팀을 덮친 부상 악령 탓이었다. 에이스 개럿 리차즈, 좌완 선발 앤드류 히니, 유격수 시몬스가 잇달아 쓰러졌고, 특히 리차즈와 히니는 팔꿈치 인대 부상으로 시즌을 완전히 마감해버렸다(이후 리차즈는 재활을, 히니는 토미 존 수술을 선택했다). 어깨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하고 있던 왕년의 에이스 C.J. 윌슨은 재활이 점차 늦춰진 끝에 시즌 내내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선발진에 거대한 구멍이 생긴 에인절스는 결국 구직 중이던 왕년의 에이스 팀 린스컴을 급히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그간 가파른 하락세를 보여왔던 린스컴에게 팀의 선발 자리를 선뜻 내어줄 정도였으니, 그 상황의 심각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임기응변으로 한 시즌을 무사히 마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린스컴은 9경기에서 9.16의 ERA를 기록한 뒤 지명할당되었고, 이후 트리플A행을 받아들였다. 5월 이후 눈부신 호투를 펼치며 선발진을 이끌었던 슈메이커마저 9월 초, 불의의 부상으로 조기에 시즌을 마감했다. 정규시즌을 마치고 보니, 결국 올 시즌의 에인절스 선발진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는 단 한 명, 제러드 위버뿐이었다.

메말라버린 마이너리그 팜으로는 구멍 난 전력을 메꿀 도리가 없었다. 낙심한 팬들과 언론들은 6월도 되기 전부터 ‘차라리 트라웃을 팔고 전면적인 리빌딩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실제로 에인절스는 6월3일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지구 3위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물론 시즌에 대한 희망은 그보다도 훨씬 전에 이미 무너져 있었다.

 

최고의 선수 – 마이크 트라웃, 맷 슈메이커

트라웃은 올해도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fWAR 1위를 차지했다(9.4). 워싱턴의 호불호 갈리는 ‘한 선수’만 아니었다면 2012년부터 5년 연속 1위라는 진기록을 세울 뻔했다. 타석에서의 생산력도 당연히 최고 수준이었다(wRC+ 171, ML 1위). 그리고 올해도 MVP 투표에서는 2위에 오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아니라면 역사의 전환점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당연히 트라웃 개인의 성적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팀 성적 탓이다.

안타까운 것은 몇 년째 그를 뒷받침할 타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인절스는 이 위대한 타자의 황금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연고지의 다른 팀은 세계 최고의 투수를 보유하고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꾸준하게 질타를 받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에인절스 팬들의 가슴은 더욱 먹먹할 것이다.

한편, 부상으로 울상이 되었던 선발진의 활력소가 되어준 것은 맷 슈메이커였다. 슈메이커는 지난해의 부진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삼진, 볼넷, 평균자책점 모두에서 2014시즌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K/9 8.04, BB/9 1.69, ERA 3.88).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이상이었다.

반등의 기점이 된 것은 현지 시각 5월 21일의 선발등판이었다. 그전까지의 7번의 시즌 등판에서 슈메이커는 작년보다도 한층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까지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무려 8.49. 그러나 21일 경기를 기점으로, 슈메이커는 이전의 2배에 가까운 비율로 스플리터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앞선 7경기에서 24.4%를 기록했던 스플리터의 구사율은 이후 나선 경기들에서 44%까지 상승한다(시즌 전체 스플리터 구사율 36.3%).

효과는 탁월했다. 슈메이커는 21일 경기에서 7.1이닝 동안 3개의 안타만을 내주면서 12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고공행진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7월 16일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데뷔 첫 완봉승을 거두었고, 21일부터 시즌 마지막 등판까지의 기간으로 한정하면 사이 영 상 후보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130.1이닝, ERA 2.83, 17볼넷 121삼진의 놀라운 성적을 남겼다. 올해의 에인절스에서 일어난 가장 기분 좋은 반전이었다.

안타깝게도 슈메이커는 9월 초, 타구에 머리를 맞는 끔찍한 부상(두개골 골절)을 당해 시즌을 마무리했다. 다행히 수술을 무사히 마쳐 내년 개막 즈음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리차즈와 히니의 빠른 복귀를 확신할 수 없는 에인절스로서는 슈메이커의 복귀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할 듯하다.

 

가장 발전한 선수 – 캠 베드로시안

2010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았던 베드로시안은 올 시즌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자신의 커리어보다는 1987년 사이 영 상 수상자인 스티븐 베드로시안의 아들이라는 가족력이 더 눈에 띄었을 정도였다. 강력한 구위를 앞세워 2014년에 빅리그 데뷔를 이뤄내기는 했으나, 불안한 제구력이 꾸준히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지난 오프시즌 동안 투구 동작에 살짝 수정을 가한 것이 베드로시안의 커리어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앞선 두 시즌 동안 5개를 넘겼던 9이닝당 볼넷 개수는 3.12개로 크게 줄어들었고, 9개를 살짝 넘기던 9이닝당 탈삼진 개수는 11을 돌파했다(11.38). 시즌 평균자책점은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낮은 1.12. 뛰어난 활약을 이어간 끝에 8월 2일에는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베드로시안은 혈전 제거 수술을 받으며 시즌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등판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기복 없이 압도적이었던 올 시즌의 모습은, 그에게 에인절스 차기 마무리로의 성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주목할 만한 선수 – 알버트 푸홀스

물론, 주목할 만하다는 이유가 빼어난 성적 때문은 아니다. 21세기의 첫 10년을 호령했던 최고의 타자 푸홀스는 이미 노쇠한 지 오래다. 푸홀스는 4년 연속으로 0.800 미만의 OPS를 기록했고, 에인절스의 입장에서도 그의 영입은 십중팔구 실패한 계약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커리어를 마감했고, 데이빗 오티즈도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들과 달리, 푸홀스는 금지 약물 복용이라는 추문으로부터 자유롭다. 푸홀스는 어느새 ‘깨끗한’ 이정표를 갈구하는 메이저리그 팬들의 염원을 담은 특별한 존재로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매김했다.

푸홀스는 올해 31개의 홈런을 추가하며 통산 591홈런 고지에 올라섰다. 1년 사이에 레지 잭슨, 라파엘 팔메이로, 하몬 킬러브루, 마크 맥과이어 그리고 프랭크 로빈슨의 이름을 제쳤다. 통산 홈런 9위에 오른 그의 다음 목적지는 새미 소사(609)다. 소사보다 한 계단 위인 짐 토미(612)도 내년 시즌 안으로 노려볼 만하다. 건강만 유지할 수 있다면, 은퇴 전에는 6위 켄 그리피 주니어(630)와 5위 윌리 메이스(660)마저 넘어서게 될지도 모른다.

과연 이 ‘살아있는 전설’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인류가 보이저 1호의 비행을 경외 속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는 21세기 가장 위대한 타자의 항해를 지켜보고 있다.

 

가장 실망스러운 선수 – C.J. 윌슨, 휴스턴 스트리트

지난 4년 동안의 기록은 논외로 하자(그래도 2번이나 200이닝을 넘겼다). 그렇지만 올해는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 수준이었다. 올 시즌 2000만 달러의 연봉을 수령했지만 단 한 차례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던 선발투수 C.J. 윌슨 이야기다. 시즌 전 2선발로 예상되었던 윌슨이 시즌 내내 모습을 감추고 리차즈-히니마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에인절스의 선발 로테이션에는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하고 말았다. 물론, 부상을 당하고 싶어서 당하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윌슨의 그간의 활약이, 특히 올해의 활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실망스러웠던 것은 스트리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6.45의 평균자책점은 2011년의 3.86을 까마득하게 넘어서는 커리어 최악의 기록. 거기에 경기수와 투구 이닝 또한 커리어에서 가장 적었다(21경기, 22.1이닝). 올 시즌 에인절스의 실패에 더 큰 책임이 있었던 쪽은 불펜보다는 선발진이었지만, 스트리트는 지난해 2년 연장 계약을 맺은, 불펜진의 중심을 잡아주었어야 하는 투수였다. 에인절스에게 그의 부진은 기록 이상으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키 포인트 – 엎어진 ‘고’, 내년에도 다시 ‘고’?

에인절스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의 4시즌 동안 89승-78승-98승-85승, 지구 3위-3위-1위-3위를 기록했다. 마이너리그 팜은 이 대권 도전의 와중에서 황폐화된 지가 오래. 올해 초, ‘고’냐, ‘스톱’이냐의 기로에서 구단은 다시 한 번 ‘고’를 택했다.

그러나 2명의 주요 선발투수가 부상으로 중도 이탈(윌슨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하면서 계획은 전부 어그러졌다. 팀은 린스컴의 영입, 슈메이커의 깜짝 활약, 트로페아노의 꾸역투(?)를 통해 시즌 초반을 어찌어찌 버텨 나갔지만, 이탈한 전력을 완전히 메꾸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인절스의 베팅도 마지막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트레이드 마감시한 당시 에인절스의 선택은 리빌딩보다는 ‘리툴링’에 가까웠다. 특히 헥터 산티아고와 리키 놀라스코의 교환은 많은 이들에게 의아한 선택으로 비춰졌다. 다행히 놀라스코는 에인절스에서 반등했지만, 이것이 팀의 재건과는 거리가 먼 트레이드였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에인절스에게 이런 결정을 내릴 합리적인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윌슨과 제러드 위버의 계약이 올해로 만료되면서 지갑 사정이 한결 나아졌다. 타일러 스캑스가 시즌 후반에 복귀했고, 리차즈의 재활도 아직까지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야수진의 성적은 투수들보다는 훨씬 좋았다. C.J. 크론의 성장세가 눈에 띄었으며, 시몬스의 계약은 아직도 4년이나 남았다. 즉, 팀의 코어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이크 트라웃이 건재한 상황에서 그리 쉽게 ‘리빌딩’ 스위치를 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총평

지난 몇 년 동안 에인절스는 비슷한 행보를 되풀이했다. 꾸준히 컨텐더급 전력을 유지하기를 원했고, 마이너리그 팜에는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안드렐톤 시몬스를 데려오면서 특급 좌완 유망주 션 뉴컴을 내준 것은 너무나도 ‘에인절스다운’ 선택 가운데 하나였다. 허나 올해는 이 행보도 마침내 막다른 골목을 마주한 듯한 모습이었다.

현재의 에인절스 전력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역시 투수진이다. 이번 시즌, 에인절스의 투수진이 기록한 fWAR의 합계는 5.9였다(ML 29위). 포스트시즌 도전을 천명한 팀의 성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기록이다. 그러나 이번 FA 시장에서는 마땅한 선발투수 매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1980년생 리치 힐이 선발투수 최대어로 꼽히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윌슨과 위버의 계약 만료로 지갑 사정은 나아졌지만, 이를 투자할 만한 선수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에인절스의 현재 상황이다(사실 그전에도 에인절스는 돈을 ‘쓸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잘못’ 써온 쪽에 가까웠다).

결국 에인절스의 내년 시즌 투수진은 외부 영입보다는 내부 자원의 성공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 물론 뒤집어 생각해보면, 선발진은 확실하게 바닥을 친 만큼 다시 올라갈 여지도 충분한 편이다. 올 시즌에는 스캑스의 성장이 돋보였고, 내년 시즌에는 리차즈가 부상에서 돌아온다. 에인절스의 내년에서 가장 기대해볼 만한 부분은, 역시 선발 로테이션의 높은 반등 가능성이다.

야수진의 사정이 투수진보다는 낫다는 점 또한 위안거리로 삼을 만하다. 팜을 가꾸어 성적을 내려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에인절스는 내년에도 최소 5할의 성적을 목표로 즉시전력감을 영입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이크 트라웃의 존재는 언제든 다시 위를 향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기록 출처: Fangraphs, Baseball Reference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