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보토의 시간은 거꾸로 갈 수 있을까

(사진=Wikimedia Commons)

 

[야구공작소 김동민] 2008년에 개봉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를 기억하는가?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비현실적인 내용을 스크린에 옮김으로써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바로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가 되어 죽는다’는 설정이다. 몸은 영락없는 신생아지만 얼굴은 주름이 넘쳐나는 늙은이의 모습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이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지만, 점점 젊어지는 자신의 외모에 적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름다운 인생을 보낸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남들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자신의 외모를 극복하고 진실된 사랑을 이뤄내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여운을 주는 영화다.

야구 글에 왜 영화 이야기가 나올까 싶겠지만, 메이저리그에는 작년까지 이 영화의 주인공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던 선수가 있다. 2010시즌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한 뒤 부상으로 2014시즌을 절반 이상 결장하면서 하락세에 접어드는 듯했던, 그러나 복귀 이후 이전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내면서 ‘내 시간도 거꾸로 간다’는 것을 보여줬던 선수다. 그런데 이 선수의 이번 시즌은 지난 몇 시즌과는 다른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신시내티 레즈의 1루수 조이 보토가 그 주인공이다.

2015시즌부터 2017시즌까지,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던 나이에도 보토의 기량은 압도적이었다. 쇠퇴를 모르는 타격은 그를 ‘투수들의 공포’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올 시즌은 사정이 상당히 다르다. 전반적인 지표가 눈에 띄게 하락했고, 내구성에도 점차 불안 징조가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알던 조이 보토란 선수는 전성기의 모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사진=Flicker Keith Allison)

 

나이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일까

1983년 9월 10일 출생인 보토는 얼마 전 만으로 35세가 됐다. 2018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한 경기라도 출장한 1374명의 선수 가운데 보토와 나이가 같거나 더 많은 선수들은 보토를 포함해도 114명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선수의 8.3%에 불과한 숫자로, 근래 들어 노장들이 빅리그에서 입지를 유지하기가 한층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실제로 보토가 메이저리그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2007시즌의 경우, 동일한 연령 조건을 만족하는 선수의 비중이 13.1%(1278명 중 168명)에 달했다.

MVP 투표에서 간발의 차로 2위를 차지했던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보토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건재해 보였다. 그에 비하면 2018년의 보토는 우리가 알던 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나이로 인한 노쇠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이었는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컨택트 비교>

지난 3년간 0.314, 0.326, 0.320으로 리그 정상급을 유지했던 보토의 타율은 올 시즌 0.284로 떨어졌다. 하지만 배트에 공을 맞추는 컨택트 능력에 관한 지표는 이전 세 시즌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다.

 

[표 1] 2015~2018 조이 보토의 컨택트 관련 지표 변화 (출처=Fangraphs)

 

위의 표는 2015시즌부터 2018시즌까지의 보토의 컨택트 기록 관련 지표들을 나열한 것이다. O-Contact%는 스트라이크 존 바깥으로 향한 투구에 대한 컨택트 비율이며 Z-Contact%는 존 안으로 들어온 투구에 대한 컨택트 비율, 그리고 Contact%는 전체 투구에 대한 컨택트 비율을 의미한다.

이전 세 시즌과 비교했을 때 2018시즌 보토의 컨택트 능력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나아진 모습이었다. 늘어나는 나이에도 보토의 컨택트 능력은 여전히 무너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플레이트 디시플린 비교>

보토의 ‘눈 야구’ 역량은 이미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2010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9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보토보다 많은 볼넷(967개)을 고르거나 높은 볼넷 비율(17.5%)을 기록한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토는 올 시즌에도 마이크 트라웃과 브라이스 하퍼의 뒤를 이어 볼넷 비율 3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표 2] 2015~2018 조이 보토의 플레이트 디시플린 관련 지표 변화 (출처=Fangraphs)

 

메이저리그에서는 볼넷을 고르는 능력을 플레이트 디시플린(Plate Discipline)이라 일컫는다. 보토는 MVP를 수상한 2010년부터 관련 지표에서 최상위권을 지켜왔는데, 여기에 2017년부터는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공에 대한 스윙과 헛스윙 비율까지 한층 더 줄여버렸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16.5%의 O-Swing%(스트라이크 존 바깥으로 빠진 공에 대한 스윙 비율)와 5.9%의 SwStr%(헛스윙 비율)는 작년과 거의 같은 수치로, 각각 올 시즌 메이저리그 평균 O-Swing%(30.8%)와 SwStr%(10.6%)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굉장한 기록이다.

 

<파워 비교>

보토는 2017년 162경기에 모두 출장해 36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이는 MVP를 수상한 2010년의 37개에 이어 커리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였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140경기에서 단 12개를 때려내는 데 그치면서 직전 시즌의 1/3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2015시즌과 2016시즌에도 나란히 29개씩을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올 시즌을 기점으로 장타력 감퇴가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표 3] 2015~2018 조이 보토의 타구 질 지표 변화 (출처=Fangraphs, Baseball Savant)

 

그러나 보토의 타구 질은 전혀 나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좋아졌다. 위의 표는 지난 4년 간 보토가 생산해낸 타구의 질을 다루고 있다. Soft%(약한 타구의 비율), Med%(중간 정도 타구의 비율), Hard%(강한 타구의 비율) 각각의 변화 추이를 관찰했을 때, 올 시즌의 보토는 오히려 지난 3년에 비해 더 많은 Hard% 타구를 생산하낸 타자였다. 잘 맞은 타구가 더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타구의 발사 속도와 발사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사 속도는 2017년과 비교해 오히려 증가했으며, 발사각에도 뚜렷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표 4] 2015~2018 조이 보토의 타구 유형 지표 변화 (출처=Fangraphs)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위의 표는 타구의 유형에 대한 지표들을 담고 있다. 각 항은 차례로 GB/FB(뜬공 대비 땅볼 타구 비율), LD%(라인드라이브 비율), GB%(땅볼 비율), FB%(뜬공 비율), 그리고 HR/FB(뜬공 대비 홈런 비율)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보다 유의미한 수준의 차이가 관찰된다. 지난 3시즌과 비교했을 때 올 시즌의 보토는 라인드라이브 비율이 높아지고 뜬공 비율은 줄어든 타자였다. HR/FB는 아예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해버렸다. 여러모로 홈런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타구 내용이었던 셈이다. 물론 이전에도 보토는 라인드라이브 히터였다. 하지만 잘 맞은 타구가 포물선을 그리는 확률이 결코 적지 않은 타자이기도 했다. 올 시즌에는 그 비율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지난 6월, 미국의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The Athletic)의 C. 트렌트 로세크랜스는 이를 주제로 보토와 인터뷰를 나눴다. 보토는 자신의 타구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전 제 커리어에서 (올 시즌 들어) 가장 많은 강한 타구를 때려내고 있습니다. 잘해왔다고 생각하고, 지금보다 더욱 잘 쳐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당시의 성적(0.295/0.424/0.444)이 괜찮은(fine) 성적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전 괜찮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성적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언제나 조정이 필요하니까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투수를 상대하든, 어떤 상황이든 저는 매 타석마다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사실이죠. 이번 시즌 들어 가장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만약 ‘더 이상 옛날의 그 보토가 아니다’라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면 그것이 나이 때문일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보토는 답변을 피하지 않았다.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을 생각하면 그 질문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군요. 저는 이제야 300타석 정도에 들어섰습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한 것 같네요. 그러나 저는 지금도 잘 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제 파워에 대한 사람들의 염려에 대해서도 오히려 그것이 제 성적의 한 부분일 뿐이며, 점점 올라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즌 말미가 되자 보토의 성적은 인터뷰 시점보다도 더 떨어지고 말았다. 단순히 타구 유형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노쇠화가 온 탓인지는 다음 시즌 성적을 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분명 보토의 장타력은 이번 시즌 우려를 낳을 정도로 줄어든 모습이다.

 

(사진=Wikimedia Commons)

 

이제 보토는 평범한 타자다?

보토의 성적은 분명 지난 몇 시즌만 못하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보토는 여전히 리그 최고의 1루수 중 하나이며, 많은 영역에서 정상급 타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장타는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타율은 여전히 준수하고, 출루율은 올 시즌에도 내셔널리그 1위를 지키고 있다. 선수의 타격 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wOBA(가중 출루율)와 wRC+(조정 득점 생산력) 역시 수준급이다. 35세의 보토를 능가하는 타격을 지닌 타자는 여전히 그리 많지 않다.

출루율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현재 보토는 0.418의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라이브 볼 시대가 시작된 1920년 이래 메이저리그에서 35세 이상의 나이로 0.418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한 사례는 단 66번(36명)에 불과하다. 거의 한 세기 동안의 총합이 66개에 불과하니, 산술적으로 한 해에 한 차례도 나오지 않은 대기록인 셈이다. 이 리스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자들이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 배리 본즈 같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들이라는 사실 역시 보토가 전설들의 길을 따르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

파워는 하락했지만 보토는 여전히 가치 있는 타자다. 근래에는 나이가 들어 신체 능력이 하락하면서 하나를 포기하고 나머지에 집중하는 타자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보토 역시 그런 과도기를 겪는 중이라 짐작해볼 수도 있다. 알버트 푸홀스를 생각해보자. 전성기 시절 모든 것을 갖춘 타자로서 메이저리그를 영원히 주름잡을 것처럼 보였던 푸홀스지만, 노화를 맞아 파워와 컨택트 중에서 파워를 선택하면서 지금은 ‘파워 원 툴’ 타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보토의 선택은 그 반대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세월을 극복하기 위한 변화의 시도. 그 결과가 성공일지 실패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보토는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신시내티에 살고 레즈에 죽는다

이제는 신시내티 레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끝까지 남을 확률이 높아진 보토지만,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그의 행선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2016년 여름,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보토의 트레이드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팀의 1루수 저스틴 스모크가 컨텐더 팀 주전 1루수로는 아쉬운 성적을 올리고 있었는데, 대신 이 자리에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보토를 영입한다면 흥행과 실리 모두를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전문가들도 최상의 행선지는 블루제이스라고 입을 모았다. 이 트레이드는 성사 직전까지 추진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보토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트레이드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신시내티가 극도의 부진에 빠져 있던 2018시즌 초반, 보토는 야후 스포츠의 MLB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제가 경험한 최악의 시즌 출발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야구 선수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제 역할은 당연히 필드 위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입에는 지퍼를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이 팀에서 뛴 지 거의 17년이 된 거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비즈니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팀 동료들은 제 말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만, 그저 실망스럽네요.”

한 팀의 선수가 방송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팀의 행보가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예상대로 이 발언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보토는 인터뷰에서 “선을 넘었다”면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제가 팟캐스트에 나가서 했던 말들에 대해서는 미안해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제 말 중에 몇몇 부분이 지나치게 과격했던 것 같기는 합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정말 못하고 있었고 저는 그에 대해 좌절감을 느꼈으니까요. 저는 팀에게 최선이 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

저는 레즈 유니폼을 입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제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끝나는 날까지 이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토는 팀의 리더로서는 다소 아쉬운 면모를 지닌 선수다. 이상적인 리더로 꼽히는 데릭 지터는 어려움에 처한 팀원을 다독여주고, 끝내기 안타나 홈런이 나올 때마다 홈 플레이트에서 동료를 반갑게 맞아주던 선수였다. 보토에게서 그런 면모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심판들과 스트라이크 존으로 매번 다투고, 퇴장을 당할 때면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것으로 유명한 편이다.

하지만 완벽한 리더의 면모는 갖추지 못했을지 몰라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수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신시내티의 외야수 제시 윙커는 시즌 전 인터뷰에서 “보토의 경기를 보면 그저 감명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보토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영원히 남기를 희망하고 있다. 팀의 리더로서 조금 흠이 있으면 어떤가. 그는 이미 신시내티 레즈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우뚝 서 있다.

 

(사진=Flicker Keith Allison)

 

나는 신시내티 레즈의 영원한 팬이다

영화 이야기로 잠깐 다시 돌아가보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몸은 아기가 되었지만 정신은 늙어 치매에 걸린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한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품 안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는다. 온갖 고난을 겪었던 주인공에게는 일종의 해피 엔딩이었는지도 모른다.

보토 역시 그의 커리어를 신시내티에서 아름답게 마무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 팀에서 커리어를 전부 보내고 은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보토와 팬들 모두가 이를 간절히 바란다. 137년에 이르는 구단 역사에서, 신시내티에서만 10년 이상을 활약하고 은퇴한 원-클럽 맨(One-Club Man)은 현역을 제외하면 단 6명뿐이다. 오늘도 보토는 그 7번째 길을 걸어 나가고 있다.

 

기록 출처=mlb.com, Fangraphs, Baseball-Reference, Baseball Savant, Yahoo Sports(기사 원문), Reuters(기사 원문), The Athletic(기사 원문) <모든 기록은 9월 24일 기준>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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