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무너진 머니볼 신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시즌 전 팬그래프 예상 성적: 79.3승 82.7패
시즌 최종성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5위(69승 93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김남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지난해 68승 94패의 성적을 남겼다. 빌리 빈 사장이 오클랜드에 합류한 이래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분명 실망스러웠지만, 불운했었다는 변명이 가능한 시즌이기도 했다. 피타고리안 승률(득실차를 이용한 기대승률)에 따른 기대 승수는 77승으로 실제 성적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성적(69승)을 기록한 올해, 팬들의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올 시즌의 성적은 피타고리안 승률(70승 94패)과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경기 내용은 지난해보다 훨씬 더 나빠진 것이다. 게다가 오클랜드가 2년 연속 70승 미만을 기록한 것은 무려 50여 년 전,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시절인 1964년~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클랜드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클랜드의 부진은 어느정도 예견됐던 일이었다. 2014년 요에니스 세스페데스와 에디슨 러셀을 잃었고, 2015년을 앞두고선 팀의 간판 타자인 조쉬 도날슨을 트레이드 하면서 리툴링 작업을 거쳤다. 문제는 이 트레이드들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는 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클랜드는 지난해 피타고리안 승률보다 9승이나 손해를 봤다. 이는 불펜 투수진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오클랜드의 1점차 성적은 19승 35패로 부진했다. 불안했던 뒷문을 강화하기 위해 오클랜드는 올 시즌 전 라이언 매드슨, 존 액스포드 등의 선수들을 영입했다. 뿐만 아니라 소니 그레이와 함께 선발진을 이끌 투수로 리치 힐을 영입했고, 타선에서는 밀워키로부터 크리스 데이비스를 영입하며 부족한 파워를 보완하며 구색을 갖췄다.

나름의 보강 속에서 시작한 2016 시즌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4월 한달간 13승 12패를 거두면서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지난 해 약점으로 지적됐던 불펜 투수진이 4월에만 10세이브 11홀드 1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반전을 이루는 듯 했다. 하지만 5월 이후로는 매달 4~5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에서 3번째로 많은 23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나마 세이브 개수가 지난해 28개에서 42개로 늘어난 점이 위안거리였지만, 이번 시즌 역시 4월 이후 불펜이 무너지면서 팀 성적 역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불펜 투수 쪽에서 약간의 발전을 보인 반면, 선발 투수와 타선은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올해 오클랜드의 선발승은 43승, 선발 투수들의 fWAR 합은 7.2로 모두 빌리 빈이 부임한 이래 최저 수치였다. 타자들의 fWAR 합 또한 4.1로 빌리 빈 시대 이후 가장 낮았다.

선발 투수진이 부진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에이스 소니 그레이의 부상과 부진이었다. 게다가 켄달 그레이브먼을 제외하면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가 없었다. 타선 또한 엇박자가 계속되면서 시즌 내내 좋지 못했다. 전반기에는 마커스 세미언과 대니 발렌시아가, 후반기에는 라이언 힐리가 반짝 활약을 펼쳤지만 그 뿐이었다. 시즌 내내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인 타자는 크리스 데이비스 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즌 중 발렌시아와 빌리 버틀러가 싸우는 모습까지 보이며 팀 분위기 또한 좋지 못했다.

빌리 빈의 ‘머니볼’은 저평가된 볼넷과 출루의 발굴로 대변되지만, 올해 오클랜드는 볼넷을 많이 얻지도, 출루를 자주 하지도 못했다(출루율 .304, 볼넷비율 7.3%). 수비 면에서도 Def 수치가 빌리 빈의 19년 중에서 18번째로 낮은 성적을 기록하며 불안함을 노출했다. 올해의 오클랜드는 모든 면에서 빌리 빈의 최악의 시즌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최고의 선수 – 크리스 데이비스, 리치 힐

최악의 성적을 남긴 오클랜드지만 크리스(Khris) 데이비스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데이비스의 시즌 성적은 .247/.307/.524의 타율/출루율/장타율에 42홈런 102타점. 42개의 홈런은 메이저리그 전체 공동 3위의 기록이며 오클랜드 타자로는 2000년 제이슨 지암비 이후 첫 번째 40홈런 타자가 됐다.

데이비스의 선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밀워키에서 뛴 지난해에도 27개의 홈런을 날렸는데 그 중 21개의 홈런이 후반기에 나온 것이었다. 이미 <팬그래프>의 제프 설리번은 데이비스를 30홈런 타자로 주목한 바 있다.

데이비스는 4월을 제외하고 매달 5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약점으로 지적되는 출루 능력도 후반기에 개선되면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출루율 전반기 .284/후반기 .332).

타선에서 데이비스의 활약이 빛났다면 투수 쪽에선 리치 힐이 날아 올랐다. 1년 600만 달러에 FA 계약을 맺고서 영입된 힐은 후반기에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긴 했으나, 전반기에 보여준 활약만으로 오클랜드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로 꼽힐 만했다.

힐은 오클랜드에서 14경기동안 76.0이닝 9승 3패 2.2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전반기만 봤을 때 힐보다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아메리칸리그 투수(70이닝 기준)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마이클 풀머 한 명에 불과했다. 전반기 오클랜드의 선발승 24승 중 9승이 힐 혼자서 거둔 것이었다. 전반기 최고의 활약을 보인 힐은 조쉬 레딕과 함께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오클랜드에 여러 유망주들을 남기고 떠났다.

이 트레이드로 넘어온 자렐 코튼은 시즌 막판 5번 선발로 등판, ERA 2.15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그 외에도 전미 유망주 랭킹 100위 내에 들어가는 그랜트 홈즈와 프랭키 몬타스까지 총 3명의 투수 유망주가 리치 힐의 대가로 오클랜드에 넘어왔다. 당장의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오클랜드에겐 어쩌면 전반기 힐의 센세이셔널했던 활약보다 더 반가웠던 것이 이 후 힐을 통해 영입한 유망주였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선수 – 소니 그레이

오클랜드의 에이스 투수 소니 그레이는 지난해 14승 7패 평균자책점 2.73을 기록하며 사이영상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그레이의 성적은 5승 11패, 5.69의 평균자책점. 1년새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5.69의 평균자책점은 100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 142명 중에 7번째로 높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상으로 인해 22경기 등판에 그치며 그 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온 작은 체격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신장 177.8cm).

표면적으로 보이는 세부 지표에선 그레이의 부진 원인을 찾기 힘들다. 구속과 무브먼트에서 거의 변화가 없고 땅볼 비율도 예전과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9이닝당 탈삼진 개수와 볼넷 또한 예전과 비교해 크게 나빠진 것은 아니다.

문제는 득점권에 주자가 나갔을 때 제구력이 좋지 못했으며, 패스트볼이 한가운데로 몰리고 있어 피홈런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주자가 없을 때 그레이의 삼진 비율은 19.3%, 볼넷 비율은 7.9%인데 반해 득점권에 주자가 나간 상황에서는 각각 15.5%와 11.6%로 나빠졌다. 누상에 주자가 있을 때 급격히 흔들린 탓에 찬스 허용이 곧장 실점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패스트볼 제구 문제는 보다 심각했다. 커맨드가 제대로 되지 않은 패스트볼 탓에 2014년 0.64개, 2015년 0.74개였던 9이닝당 피홈런 개수는 올 시즌 1.38개로 2배 가까이 폭등했다. 탈삼진, 볼넷과 함께 피홈런은 투수의 순수 능력을 비교적 잘 드러내주는 지표라는 점은 감안하면 분명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변화다. 또한 그레이의 강점이었던 투심 패스트볼 역시 올해는 타자들의 먹잇감이 됐다(피안타율 .262-> .364).

시즌이 개막하기 전만 하더라도 빌리 빈 사장은 여러 팀의 관심을 받고 있던 그레이를 트레이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젠 건강하지 못한 그레이를 영입하고자 하는 구단도 없으며, 설령 트레이드를 시도하더라도 올 시즌의 부상과 부진 탓에 제대로 된 가치를 받기 힘들게 되었다. 때문에 17시즌 그레이의 활약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그레이가 반등에 성공한다면 빌리 빈 사장은 소니 그레이로 다시 한번 팀의 리툴링을 시도할 수도 있고, 그를 중심축으로 다시금 우승에 도전할 전력을 구축할 수도 있다. 앞으로 그레이가 보여줄 모습에 따라 팀의 운용 범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키 포인트 – 부상으로 얼룩진 시즌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오클랜드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뛴 선수는 타자가 26명, 투수가 27명이었다. 메이저리그 기본 로스터 숫자인 25명의 2배가 넘는다. 그만큼 부상자가 많았음을 뜻한다. 규정 타석 혹은 규정 이닝을 채운 선수는 단 6명에 불과하다. 꾸준하게 출장한 선수가 적다 보니 올 한해 오클랜드가 사용한 수비 라인업은 122개나 되며, 배팅 오더는 무려 141개에 달했다. 베스트 라인업이 꾸려진 것은 5번에 불과하다.

오클랜드에서 올해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19명이었고, 이들이 부상자 명단에 들어간 날수는 2,207일에 달했다(지난해 11명 / 1,086일). 이는 올 시즌 LA 다저스의 2,403일 다음으로 긴 기간이었다. 다만 다저스는 부상자를 대체할 수 있는 두터운 선수층을 갖췄었고 오클랜드는 그러지 못했다. 부상에 대응할 수 없는 얇은 선수층은 부진한 성적으로 직결됐다.

부상자 발생은 새로운 선수의 등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올해 오클랜드에서 데뷔한 선수는 총 15명. 젊은 선수들에게는 출전의 기회가 제공된 것이다. 기회를 잡은 가장 대표적인 선수는 라이언 힐리다. 힐리는 72경기에 나와 13개의 홈런과 OPS .861을 기록하면서 ‘제2의 조쉬 도날슨’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비에서는 약점을 보였지만 공격면에서는 내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선수다.

투수 중에선 션 마네아와 자렐 코튼이 주목할만한 선수다. 오클랜드의 몇 안 되는 투수 유망주인 마네아는 붕괴된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144.2이닝 동안 3.8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올 시즌이 데뷔 첫해라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적이다. 코튼은 리치 힐 트레이드로 넘어온 선수로 시즌 막판 얻은 등판 기회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올해로 24세인 동갑내기 좌우 영건이 내년 시즌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로테이션을 지킬 수 있다면, 오클랜드의 투수진 역시 의외의 반전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총평

부진했던 지난 2년간의 성적처럼, 내년에도 오클랜드의 전망은 밝지 않다. 지구 최하위를 기록할 만큼 전력이 약하지만 연고지를 이전하지 않는 이상 투자할 수 있는 돈은 매번 한정적이고, 당장 팀을 이끌 유망주 또한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내년 시즌 반전의 계기를 맞기 위해서는 그레이의 부활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레이가 지난해 모습으로 반등할 수만 있다면 내년에 성장할 그레이브먼과 마네아와 함께 새로운 영건 3인방을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 내년 시즌 로테이션은 그레이-그레이브먼-마네아-코튼-멩덴으로 이어질 전망인데, 놀랍게도 여기서 최연장자가 내년에 만 27세가 되는 소니 그레이다. 최고참급 투수가 된 그레이가 로테이션을 이끌고 그 뒤를 받춰줄 어린 선수들이 성장한다면 오클랜드 선발진은 단숨에 리그에서 가장 젊고 유망한 선발 로테이션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역시 크리스 데이비스를 제외하면 믿을만한 타자가 없는 타선이다. 힐리가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탑 유망주인 프랭클린 바레토의 성공적인 데뷔가 이어진다면 데이비스-힐리-바레토를 중심으로 새로운 타선을 구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클래스를 가진 선수 없이 신인 선수들의 깜짝 활약을 기대해야 하는 것이 부실한 오클랜드 타선의 현 상황이다. 스토브리그에서 욘더 알론소가 지켰던 1루수 자리와 레딕의 이탈로 생긴 외야 공백 메울 선수를 영입할 가능성이 높은데, 새로 영입될 선수들의 활약 역시 내년 오클랜드 타선을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7 시즌은 빌리 빈이 야구 운영 사장에 올라서고 맞이하는 2번째 시즌이다. 최근 무너진 빌리 빈의 ‘머니볼’ 신화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마냥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때문에 내년 시즌은 어려운 상황 속 빌리 빈의 운영 능력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지도 모른다.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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