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유감(有感)] KBO의 ‘헛스윙’

(사진=LG 트윈스 제공)


[야구공작소 오연우] 스포츠의 핵심은 현장성이다. 경기의 매 순간 미지의 미래가 현재로 바뀐다. 미래가 현재가 될 때, 환희와 탄식이 교차한다.

스포츠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은 배트로 공을 치는 것과 같다. 공을 칠 수 있는 것은 찰나의 순간뿐이다. 찰나의 순간을 놓친 뒤에는 아무리 완벽한 스윙도 헛스윙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짧은 한순간뿐이다. 그 순간을 놓치면 아무리 애를 써도 감동을 되찾아올 수 없다.

지난 23일, KBO는 헛스윙을 했다. 그나마 시원한 풀스윙도 아닌 어정쩡한 체크스윙이었다.

 

(사진=오연우)

4회 말, 박용택의 통산 2319호 안타가 나왔다. KBO리그의 역사가 바뀐 순간이었다. 최고의 감동을 연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가 나온 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무 일도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다. 주루코치와의 포옹 한번이 전부였다. 상황을 모르고 보면 그저 평범한 2루타였다. 불꽃 하나 쏘아 올리지 않았다. 경기는 계속됐다.

이닝이 끝난 후에야 짧은 행사가 진행됐다. 류중일 감독과 양준혁, 이대호의 꽃다발 전달이 전부였다. 이미 가장 중요한 감동의 순간은 지나간 뒤였다.

 

(사진=LG 트윈스 제공)

왜 안타가 나왔을 때 경기를 중단하고 축하의 시간을 갖지 않았는가. 당장 한 경기, 한 이닝을 빨리 진행하는 것이 중한가, 리그 역사에 영원히 남을 장면을 충분히 축하하는 것이 중한가. 설령 LG에서 경기를 빨리 진행하려 했다고 해도 KBO에서 중단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리 하지 않았다.

KBO는 때를 놓쳤다. 역사의 순간마다 늘 그래왔다. 사건이 발생한 그 순간 축하해 주는 일이 없다. 뒤늦게 뭔가를 하지만 이미 감동은 증발해 버린 채다. 끝내기 안타를 친 선수에게 그 다음 날 점잖게 상패를 수여하며 축하해 주는 것과 같다. 현장성이 결여된 스포츠에 감동은 없다.

 

<이승엽의 KBO 리그 최초 400홈런 때도 이렇다 할 큰 행사는 없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MLB와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두드러진다. 1985년 피트 로즈가 타이 콥의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하자 팀원들이 모두 뛰쳐나와 목말을 태웠다. 가깝게는 이치로의 3000안타 때도 팀원들이 모두 더그아웃에서 나와 이치로를 축하했고, 애드리안 벨트레의 3000안타 때는 가족들이 그라운드로 내려와 그 순간을 함께했다.

물론 박용택의 기록이 피트 로즈의 기록과 같은 무게를 가지지는 못한다.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KBO의 역할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관망하는 게 아니다. 주인이 자기 물건을 믿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사람들이 사주기를 기대하겠는가. 철저히 주관적으로, 자기 자신까지 속여 가며 같은 무게인 것처럼 홍보해야 한다. 그것이 KBO리그를 사랑하는 팬들에 대한 예의이자 의무다.  

 

에디터=야구공작소 양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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