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밤 끝으로의 여행’,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Fangraphs 2016 시즌 예측: 72.8승 89.2패 .450 (지구 5위)
실제 2016 시즌 성적: 68승 94패 .420 (지구 5위, NL 최하위)

 

[야구공작소 이의재] 2015년의 윈 나우 전략이 실패로 돌아가고 맞은 이번 시즌, 샌디에이고의 선전을 예상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실제는 예상보다도 더 나빴다. 샌디에이고는 초반부터 4할 안팎의 승률을 넘나든 끝에 페넌트 레이스에서 무기력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최종 성적은 팬그래프의 시즌 전 예측에도 미치지 못하는 68승 94패. 리그 전체로 시선을 넓혀도 샌디에이고보다 나쁜 성적을 기록한 팀은 103패의 위업을 달성한 미네소타 트윈스뿐이었다.

한 시즌 동안 28명(리그 최다)이나 되는 야수를 빅리그 무대에 기용했다는 사실은 파드레스의 전력이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였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일반적으로 한 팀이 시즌 동안 기용하는 야수의 수는 20~23명 사이이다. 파드레스는 또한 32명이나 되는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는데, 이 역시 리그에서 두번째로 높은 수치였다. 파드레스의 빈약했던 전력은 선수들이 실제로 기록한 성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야수진이 기록한 11.1의 fWAR은 전체에서 27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고, 투수진이 합작한 9.3의 fWAR은 2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선발진 25위, 불펜 20위).

그러나 샌디에이고의 이번 시즌을 단순한 실패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한때 미래와 현재 모두를 잃을 뻔했던 파드레스는, 기민한 노선 변경을 통해 한 시즌만에 그간의 무리를 대부분 수습해냈다. 팀을 짓누르던 고액 연봉자들을 유수의 유망주들과 맞바꿨고, 공격적인 영입전략으로 유망주 수급 시장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만약 구단 프런트를 대상으로 기량 발전상을 수여한다면, 이번 시즌의 유력한 후보 중 하나는 바로 파드레스의 프런트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후술할 ‘추문’ 때문에 고배를 마셨을 테지만 말이다.

 

The Good: 윌 마이어스, 라이언 쉼프, 브래드 핸드

올시즌 파드레스의 야수진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는 신인왕 출신의 1루수 윌 마이어스였다(fWAR 3.8). 손목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이탈했던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씻어내는 활약이었다. 마이어스는 건강하게 생애 첫 풀타임 시즌을 마쳤고, 빼어난 전반기 활약(wRC+ 134)을 바탕으로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올스타에 선발되었다. 유일하게 아쉬웠던 것은, 신인왕을 수상했던 2013 시즌에 이어 또 한 번 후반기에 페이스가 처지는 모습을 노출했다는 점이었다.

마이어스의 기록은 1루수로서는 상당히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1루수 치고는 평범한 수준의 타격을 선보였지만(wRC+ 115),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력(UZR/150 8.8)과 28번이나 베이스를 훔친 빠른 발(BsR 7.8)로 이를 보완하여 종합적으로는 엘리트 급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올시즌의 파드레스에서 비범한 주루능력을 선보인 선수는 마이어스만이 아니었다. 라이언 쉼프, 멜빈 업튼 주니어, 존 제이, 트래비스 잔코스키 그리고 데릭 노리스까지, 2016 시즌 파드레스의 주전 대부분은 시즌 내내 만만치 않은 주루플레이를 펼쳐주었다. 이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파드레스는 베이스런닝 실적을 나타내는 지표인 BsR에서 메이저리그 전체 1위(24.8)를 차지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마이어스 다음가는 활약을 펼쳐준 28세의 늦깎이 신인 라이언 쉼프는 작년 말, 마이너 계약으로 팀에 합류했던 선수다. 그는 한때 상당한 파워를 지닌 2루수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부족한 컨택트 능력 탓에 20대 중반까지도 AA와 AAA를 전전하고 있었다. 지난 시즌부터 K%를 18% 안팎으로 떨어뜨리며 개선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쉼프는, 올시즌 AAA를 말 그대로 폭격(wRC+ 201)하면서 메이저리그 승격의 기회를 얻었다.

코리 스팬진버그의 부상으로 공석이 된 2루 자리를 놓고 경쟁을 시작한 그는 7월에만 9개의 홈런을 몰아치면서 경쟁의 승리자로 올라섰고, 결국 .217/.336/.533, fWAR 2.4의 호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 비결은 330타석에서 20번이나 담장을 넘긴 무시무시한 펀치력과, 타율보다 1할 이상 높은 출루율을 만들어준 타석에서의 인내심에 있었다.

쉼프는 여러모로 ‘공갈포형 2루수’의 대명사였던 댄 어글라를 연상시킨다. 허나 타구 분포를 살펴보면, 쉼프의 기록은 그 어글라보다도 한층 더 극단적이었다. 고무적인 부분은 그가 홈런을 만들어낸 방식에 있다. 올시즌 쉼프의 플라이볼 타구 비율은 무려 64.9%에 달했는데, 이는 그의 펀치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HR/FB가 아니라 독보적인 뜬공 생산 능력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HR/FB 17.7%). 물론 쉼프의 활약이 그저 ‘반짝’이었는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것이었는지는 내년 시즌에 보다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극단적으로 높았던 K%는 조금 우려스럽지만(31.8%), 반대로 그처럼 20대 후반에 빛을 보기 시작한 선수들 중에도 케이시 블레이크나 루크 스캇처럼 좋은 커리어를 남긴 경우가 꽤 있었다는 점은 상당히 희망적이다.

확실한 것은, 올시즌 파드레스의 타선은 의외의 활약을 펼쳐준 쉼프 등의 알짜배기 영입들 덕에 간신히 유지되었다는 사실이다. 트래비스 잔코스키, 알렉스 디커슨, 애덤 로잘레스 같은 선수들의 예상치 못한 활약이 아니었다면 파드레스의 시즌 성적은 지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투수진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82경기(NL 1위)에 등판해 89.1이닝을 투구하면서 2.92의 ERA, 1.6의 fWAR을 기록한 신흥 ‘좌완 노예’ 브래드 핸드의 활약이었다. 이전까지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롱맨과 5선발을 오가며 여러 가지 구종을 구사했던 핸드는, 올시즌 속구와 싱커, 슬라이더 위주의 불펜투수로 변신했다(슬라이더 구사율 8.8% -> 30.7%). 탁월한 선택이었다. 새로이 주무기로 자리 잡은 슬라이더는 23.6%의 높은 비율로 헛스윙을 이끌어냈고, 핸드를 상대하는 상대 타자들의 헛스윙 비율은 지난 시즌에 비해 4.5%p나 상승했다(7.7% -> 12.2%). 그 결과, 핸드의 K/9은 11.18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부족한 탈삼진 능력을 약점으로 지목 받았던 핸드는 그 약점이 사라지자마자 확실한 A급 불펜투수로 탈바꿈했다. 셋업맨으로 완벽하게 정착한 9월부터의 성적은 실로 압도적이었다(18이닝 26탈삼진 3볼넷, ERA 2.00, WHIP 0.78).

오프시즌 동안 마무리와 두 셋업맨을 모두 떠나보낸 샌디에이고의 불펜진이 선발진보다 양호한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이 핸드와 라이언 북터, 그리고 시즌 중반 말린스로 이적한 페르난도 로드니의 깜짝 활약 덕분이었다. 로드니의 이적 이후에는 브랜든 마우어가 페이스를 끌어올려서 그 공백을 메웠다. 선발진에도 실망스러운 선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드류 포메란즈는 전반기 동안에만 2.5의 fWAR을 기록하면서 주가를 바짝 끌어올렸고, 결국 올스타 휴식기 동안 앤더슨 에스피노자라는 대형 유망주를 남기고 트레이드되었다.

Honorable Mentions: 3B 얀거비스 솔라르테 (fWAR 2.8), 2B/3B 애덤 로잘레스 (fWAR 2.0)

 

The Bad: 타이슨 로스, 데릭 노리스, 알렉세이 라미레즈

시간이 갈수록 틀이 잡히는 모습을 보여준 불펜진과는 반대로, 파드레스의 선발진은 시즌이 진행되면서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허물어져버렸다. 그 밑바탕에는 에이스 타이슨 로스의 이탈이 있었다. 2014 시즌을 기점으로 팀의 명실상부한 1선발로 올라선 로스는, 시즌 개막전부터 8실점의 부진한 투구를 펼치더니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부상자 명단으로 향했다. 그것이 로스의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다.

파드레스의 선발진은 이후로도 끊임없는 전력 누수를 겪었다. 로테이션을 이끌던 드류 포메란즈와 제임스 쉴즈가 팀을 떠났고(fWAR 기준 각각 2.5, 0.5*), 앤드류 캐쉬너마저 데드라인을 이틀 앞두고 말린스로 트레이드되었다. 4~5선발 역할을 해주던 콜린 레이 역시 이 트레이드에 포함되어 팀을 떠났다. 그렇게 로스-쉴즈-포메란즈-캐쉬너-마우어/레이로 이루어졌던 개막 당시의 로테이션은 4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소멸되고 말았다. 시즌 막바지에 이르자 파드레스의 선발 로테이션은 룰 5 드래프티인 루이스 페르도모, 왕년의 유망주들인 크리스 프리드릭과 폴 클레멘스, 그리고 원소속팀에서 방출당한 에드윈 잭슨 등의 베테랑으로 채워져 있었다.

* 쉴즈는 트레이드 직전 경기에서 10자책점을 허용하기 전까지 3.06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한편, 파드레스의 야수진은 앞서 언급한 선수들의 난데없는 원군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리그 수위의 주루에는 잘못이 없었다. 문제는 타격과 수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85에 불과한 팀 wRC+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제외한 어느 구단보다도 낮았고, 출루율은 특히 심각해서 리그 유일의 2할대(.299)를 마크하며 최하위를 차지했다. 수비 역시 만만찮았다. UZR을 기준으로 정렬했을 때, 파드레스는 전체에서 25번째로 모습을 드러낸다. 달리기를 잘했을 뿐, 치는 것도 잡는 것도 모두 시원찮았던 셈이다.

파드레스의 야수진이 빚어낸 총체적인 난국의 중심에는 데릭 노리스와 알렉세이 라미레즈의 도를 넘은 부진이 있었다. 한때 포수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타격을 자랑했던 노리스는 타석당 삼진 비율이 30%대까지 폭등하더니 .186/.255/.328의 처참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노리스가 그럼에도 주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리빌딩 노선으로 접어든 파드레스가 빅리그 준비를 마친 팀내 최고 포수 유망주 오스틴 헤지스(AAA .326/.353/.597)의 콜업을 의도적으로 늦춘 덕이었다.

노리스가 주로 타석에서 고전했다면, 라미레즈는 한술 더 떠서 아예 공수 양면에서 끔찍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지난 시즌부터 이미 유격수로서의 수비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던 라미레즈는, 올 시즌 만 34세의 나이에 주전 유격수로 출장하면서 -15.0의 암담한 UZR을 기록했다. 방망이도 나을 것이 없었다(wRC+ 63). 그렇게 라미레즈는 9월 초까지 -2.1이라는 처참한 fWAR을 적립했고*, 자연스럽게 방출 통보를 받았다. 파드레스로서는 라미레즈의 자리를 훌륭하게 메워준 루이스 살디나스의 막판 분전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 파드레스에서의 기록만으로 올 시즌 야수 중 최하위이며, 남은 시즌 동안 템파베이 레이스에서 뛰면서 그 기록에 -0.3을 더했다.

 

The Crucial: 여름 그리고 추문

아이러니하지만, 이번 시즌 파드레스의 가장 중요했던 순간은 2016 시즌의 성적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일련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의 여름은 팀에 드리웠던 암운을 거두어 미래를 밝혀준 귀중한 시간이었고, 동시에 불명예스러운 징계를 불러온 추문의 계절이었다.

1) 최고점에서의 매도

6월 4일, 잔여 연봉의 상당 부분을 보조하면서 쉴즈를 떠나보낸 것을 시작으로 파드레스는 두 달 동안의 본격적인 ‘빅 세일’을 개시했다. 0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질주하던 로드니가 유망주 크리스 패댁을 상대로 유니폼을 갈아입었고, 전반기 대활약으로 올스타까지 선정된 포메란즈가 특급 유망주 앤더슨 에스피노자와 트레이드되었다. 연봉의 대부분을 보조하기는 했지만, ‘형 업튼’마저 준수한 전반기 성적을 바탕으로 나름의 유망주를 남기고 팀을 떠났다. 앤드류 캐쉬너의 트레이드 역시 대가에 A급 유망주를 포함하고 있었다. 대미를 장식한 맷 켐프의 트레이드는 유망주를 받아오지는 못했지만, 효용가치가 사라진 켐프를 보내며 외야에 유망주들의 자리를 만들어주었고, 그나마 저렴한 헥터 올리베이라를 데려옴으로써 페이롤을 절감시켜주었다.

* 올리베이라는 얼마 뒤인 8월 10일, 파드레스로부터 방출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올 여름 파드레스를 떠나간 선수들은 켐프를 제외한 전원이 이적 후 파드레스에서의 활약을 이어가지 못했다. 쉴즈는 이적 직전의 등판을 기점으로 처참하게 무너져내렸고, 로드니와 캐쉬너는 말린스의 플레이오프 탈락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포메란즈와 멜빈 업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역설적으로 파드레스의 판매 시점이 그만큼 적절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가장 이상적인 매도는 최고점에서 이루어지는 매도이기 때문이다.

2) 파격적인 유망주 수급

파드레스의 프런트는 유망주 수급을 위한 연례행사에도 성실하게 참여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여름을 보냈다. 클레이튼 커쇼의 지명으로 이름 높은 미국 내 신인 드래프트의 달인 로건 화이트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루그네드 오도어 등의 국제 유망주 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A.J. 프렐러의 전문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풍족해진 픽 상황의 덕을 보았다. 팀은 작년의 부진 덕에 8위라는 높은 지명순번을 확보하고 있었고,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하고 시장으로 나간 이안 케네디와 저스틴 업튼은 두 장의 보충 라운드 픽을 쥐여주었다. 거기에 밸런스 픽까지 한 장이 손에 들어오면서 상위 85개 픽 가운데 무려 6개의 픽을 보유하게 된 파드레스는, 자연스럽게 지난 시즌의 미진함을 해소하는 충실한 유망주 수급을 이뤄낼 수 있었다.

3주 뒤에 열린 국제 유망주 계약시장에서는 모험적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몇몇 빅마켓 팀들의 유망주 수급 전략을 벤치마킹하여 페널티를 감수하고 계약금 상한선을 훨씬 뛰어넘는 5000만 달러 이상의 거액을 한 해에 쏟아 부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파드레스는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50인의 국제 유망주 가운데 8명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범위를 최상위의 6인으로 좁히면, 그들 중 절반이 파드레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파드레스는 무리한 윈 나우 전략의 여파를 상당 부분 수습해냈고, 팀의 체질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개선시켰다.

3) 의료정보 누락 파문

뜨거웠던 여름은 수많은 유망주들을 불러왔지만, 한편으로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후폭풍을 팀에게 안겨주었다. 8월 초 벌어진 콜린 레이의 ‘반품’ 사건은 그 예고편과도 같았다. 캐쉬너와 네일러가 주축이 된 3:4 트레이드에 합류해서 말린스로 건너갔던 레이는, 이적 후 처음 등판한 경기에서 불편을 호소하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말린스 측이 이의를 제기하자, 트레이드 당시 레이에 대응하는 카드였던 루이스 카스티요와 레이를 각각 원 소속팀으로 돌려보내는 선에서 신속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반품된 레이는 며칠 뒤 파드레스 의료진으로부터 팔꿈치 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다.

불길한 조짐은 9월 15일, 파드레스의 단장 A.J. 프렐러가 사무국으로부터 전례 없는 30일 직무 정지의 징계를 지시 받았다는 소식과 함께 현실이 되었다. 사유는 파드레스가 포메란즈와 에스피노자의 트레이드 당시 일부 의료 정보를 보스턴 레드삭스 측에 통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레드삭스로 건너간 포메란즈에게서 뚜렷한 부상이 발견된 것은 아니었다. 포스트시즌 전까지 포메란즈를 대신할 좌완 선발을 수급해 올 방안이 마땅치 않았던 레드삭스로서는 말린스처럼 트레이드의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신 레드삭스는 절차상의 책임을 물어 파드레스 프런트의 평판에 오점을 남기는 쪽을 택했다. 파드레스의 오너쉽 그룹은 의료 자료 누락에 고의성이 없었음을 주장했으나, 징계에는 조용히 승복하는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룹은 이후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마이크 디 사장을 해임했고, 대신 프렐러의 행보에 앞으로도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Epilogue

프렐러 체제의 미래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그가 이번 스캔들로 단장들의 신뢰를 잃었으며, 앞으로는 이전처럼 쉽게 선수를 팔아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파드레스가 팔아 치워야 했던 선수들의 대부분이 이미 다른 팀으로 이적을 마쳤다는 사실이다. 현재 남아있는 선수들 가운데 진지하게 매물로서 고려해볼 만한 선수는 연봉조정 마지막 해인 타이슨 로스와, 헤지스 때문에 입지가 애매해지게 될 데릭 노리스가 전부이다. 그리고 이들이 오히려 다른 팀에서 먼저 탐을 내어 달려들 만한 자원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프렐러의 추락한 평판이 파드레스에게 안겨줄 난감함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파드레스의 리빌딩은 이처럼 이미 외부와의 거래에 의존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독자적인 만듦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파드레스는 당장 내년보다도 3년쯤 뒤가 기대되는 선수진을 보유하고 있다. 선발진은 내년에도 온갖 선수들이 합류하고 사라지는 난장판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북터-핸드-마우어의 필승조가 자리를 잡은 계투진은 거의 세대교체가 완료된 모습이고, 야수진은 아예 빅리그 준비를 마친 선수들로 득실거린다. 마누엘 마곳, 헌터 르프로이, 오스틴 헤지스, 카를로스 아수아제 같은 선수들이 마이너리그를 사실상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활약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다. 보다 아래 레벨로 내려가면 근래 보충한 어리고 유망한 자원들이 남다른 재능을 뽐내며 담금질에 힘쓰는 중이다. 당장 승부를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겠지만, 몇 년 뒤라면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패권 독과점을 견제할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즌 말미의 불미스러운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샌디에이고의 걸음은 의외로 그럴싸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그 행보가 결실을 맺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모든 방황하는 자가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 J.R.R 톨킨,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Brooks Baseball, Fangraphs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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