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SK 와이번스 – 날개가 꺾였던 비룡, 잠룡이 되다

시즌 성적: 6위(69승 75패)

 

[야구공작소 김준호] 영광스러운 왕조 시절의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그 시절의 선수들은 이제 대부분 팀에 남아있지 않다. 2012년 0.546의 승률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끝으로 벌써 4년째 5할 승률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단 한 경기였다.

올해 역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렇다 할 플러스 요소가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내부 FA 6명 중 3명을 놓치는 큰 유출만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놓친 3명이 팀 내 비중이 큰 정우람, 윤길현, 정상호였기에 객관적 전력 하락은 한층 두드러졌다.

우려 속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떠나간 FA의 빈자리는 원래 그 자리가 채워져 있었던 것처럼 물 흐르듯 메워졌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많은 선수들이 ‘의외의 활약’을 펼친 덕분에 페넌트 레이스를 순항해 나갔다.

두산, NC, 넥센의 ‘3강’이 일찌감치 확정된 상태에서 4, 5위를 놓고 나머지 모든 팀이 경쟁하는 형태도 SK에게는 호재였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SK는 시즌 중반까지 꽤 오랜 기간 4위에 머물렀다. KIA와 LG가 조금씩 치고 올라왔지만 여전히 3파전의 구도를 유지하며 여름을 마친다.

한때 4위를 뺏기기도 했지만 가을이 찾아오면서 SK는 파죽의 6연승을 거두며 4위를 탈환한다. 특히 SK보다 승률이 높았던 NC, KIA, 넥센을 상대로 거둔 6연승이었기에 SK의 기세는 높기만 했다. ‘가을 DNA’는 실존하는 듯했고, 구단에서는 ‘가을 DNA 유니폼’을 출시하며 한층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가을 DNA 유니폼이 출시되었던 9월 9일의 승리를 끝으로, SK는 곧바로 9연패에 빠지게 된다. 추석 4연전 기간에는 선수들이 직접 이 유니폼을 입고 뛰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연패를 끊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4위는 물론이고 5위마저 멀어진 뒤였다. 뒤늦게 4승 1패로 시즌을 마치지만 순위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기대 없이 시작했던 시즌이었지만 시즌 중 기대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욱더 아쉬웠을 시즌이었다. 그러나 순위와는 별개로 악조건 속에서도 선수들의 부활과 성장을 통해 지난해와 비슷한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의가 있는 시즌이었다.

 

좋았던 선수

성대한 시즌을 보낸 선수는 없었지만 그 나름의 좋은 결과를 거둔 선수는 많았다. 지난해 최고의 혜성이었던 정의윤은 후반기 부진이 아쉬웠지만 첫 풀타임 시즌을 전 경기 출장으로 잘 소화해내며 27홈런, WAR 2.0이라는 괜찮은 누적 기록을 남겼다. 김성현은 2루수로 포지션을 전환하면서 수비 기여도가 많이 늘었다(수비 WAR -0.23 -> 0.56). 최승준과 김동엽은 타석은 적었지만 좋은 타격을 보여주며 프런트를 흐뭇하게 했다.

박희수는 예전 같지 않은 구위와 제구로 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K/9 6.09, BB/9 4.28). 그러나 3년 만에 드디어 풀타임 시즌을 순항하면서 정우람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메워주었다. 김주한은 프로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중간계투로 완벽히 적응해 ‘연고전 저승사자’의 명성을 이어나갔다. 채병용은 기나긴 부진의 터널을 드디어 벗어났다. 산산조각난 계투진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며 무게감의 차이를 증명했다. 켈리도 지난해에 이어 좋은 피칭을 보여주었다. 카메라가 비쳤을 때 보여주는 익살스러운 행동도 여전해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MVP – 최정

sk16월 25일, 통산 2000루타 시상식에 참여한 최정 (사진 제공: SK 와이번스)

고교 최고의 선수로 SK에 1차지명된 뒤 소년장사를 거쳐 와이번스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까지. 커리어 내내 슈퍼스타의 길을 걸은 최정은 2014시즌을 마치고 당시까지 FA 최고액인 4년 86억원에 SK와 재계약한다.

KBO 최고의 스타였지만 최정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부상. 어린 나이부터 많은 경기를 소화한 덕분에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온갖 잔부상이 이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올해는 지난 2년과 다르게 시즌 내내 아픈 곳 없이 말끔했다. 그러나 올해는 시즌 중반 엄청난 슬럼프에 빠져 버렸고, 급기야 7번 타순까지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다른 선수라면 이해해 줄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최정이기에 ‘총체적 난국’이라고 칭할 수 있는 부진이었다.

하지만 역시 최정은 최정이었다.  7월이 되자 역대급 폭염이었던 올해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방망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7월 9홈런 – OPS 1.181, 8월 10홈런 – OPS 1.282를 기록하며 금세 성적을 끌어올렸다. 비난의 소재였던 타율과 득점권 성적도 평균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288 .403 .580 wRC+ 140.7의 뛰어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고투저에 힘입어 3루수 최초 40홈런-100타점-100득점이라는 희귀한 기록을 세운 것은 덤이었다. (한편 3년 만에 20+사구로 복귀하기도 했다.)

 

실망스러웠던 선수

발전된 선수가 많았는데도 팀 승률은 그대로였다는 것은 발전을 상쇄시킨 선수도 많았다는 뜻이다. 박정권은 2013년부터 wRC+가 142.6-130.7-113.0-95.5로 꾸준히 하락하며 노쇠화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4년 30억 원의 FA 계약은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상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조동화는 이제는 수비에서도 기대할 것이 많지 않아 보인다.

박종훈은 지난해 선발로 준수한 피칭을 보여주었지만 올해는 도무지 영점을 잡지 못하며 팬들을 사레 들리게 했다. 문광은은 나올 때마다 부족한 모습을 보였고 대체 외국인 라라는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왼손 파이어볼러’를 메이저리그에서는 왜 그리 쉽게 놓아주었는지 깨닫게 했다. 계속적인 부진에도 불구하고 김용희 감독이 그를 계속 중용한 것도 일을 크게 만든 원인이었다.

 

LVP – 이명기

sk2반겨주는 이명기를 거칠게(?) 밀어내는 최정 (사진제공: SK 와이번스)

2014시즌 화려한 타격을 보여주며 그의 별명 ‘초신성’처럼 밝게 빛나던 이명기. 첫 풀타임이었던 작년 역시 2014년보다는 아쉬웠지만 충분히 좋은 타격을 보여주며 SK의 리드오프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초신성’이라는 별명 때문이었을까. 올해의 이명기는 초신성으로 모든 에너지를 다 뿜어내고 차가워져버린 별처럼 너무나 극적으로 식어버렸다. wRC+ 66.5로 팀 내 200타석 이상 타자 중 압도적인 꼴등이었다. WAR 역시 -0.42로 최하위였다.

세부적인 스탯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2013년부터 올해까지 .423-.432-.369-.307로 꾸준히 낮아진 BABIP다. BABIP에는 운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단순히 2013-14시즌은 운이 좋았고 올해는 운이 좋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지표들과 연관 지어 보면 올해의 낮아진 BABIP는 단순히 운 때문이 아니라 이명기가 타구를 때려내는 방식 때문임을 알 수 있다.

sk1이명기의 2014-16년 성적 비교

공을 맞히는 비율은 그대로인데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타구가 월등히 많아졌고, 땅볼 비율도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땅볼이 많으면 BABIP는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이명기는 그 땅볼이 내야를 벗어나지 못해 BABIP가 오히려 낮아졌다. 또한 땅볼이 늘어나면서 장타가 나올 가능성도 줄어들었고, 이는 순장타율의 감소로 이어졌다. 즉 타구를 갖다 맞히긴 하지만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내지 못했고, 그에 따라 BABIP도 낮아지고 장타도 줄어든 것이다. 타구의 질이라는 근본적인 부분이 무너졌지만 이명기는 계속 상위타순으로 중용되었고, 결국 올 시즌 최악의 선수로 남고 말았다.

 

Key Point – 감독과의 싸움

올해 SK 팬들 사이에서는 김용희 감독의 전술에 관해 부정적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 물론 좋은 선수가 명감독을 만든다는 말처럼 감독의 팀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팬들의 극성이라고 치부하기엔 올 시즌 김용희 감독의 작전에는 너무나도 의아한 모습이 많았다.

올 시즌 SK 타선에는 장타력을 보유한 선수들이 즐비했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이 타자 친화적인 곳이기에 의도적으로 장타자들을 기용했든, 작은 구장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두가 장타자가 되었든 홈런이 잘 나오는 곳에서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들을 많이 구축해 놓은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장타율이 좋은 선수들이 많았던 것과 동시에 정의윤, 고메즈, 김동엽처럼 출루율이 낮은 선수들도 많았다. 홈런이 많지만 출루율이 낮은 올해 SK와 같은 팀에서는 홈런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한 명이라도 주자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올 시즌 김용희 감독의 전술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번트를 비롯한 수많은 작전이 나왔고, 도루 시도 역시 많았다. 주자가 어느 루에 있든 홈런이 나오면 득점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므로 당장의 진루보다는 아웃카운트를 아끼는 것이 중요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작전을 확실히 성공이라도 시키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주루사 1위, 도루성공률 10위, 번트성공률 6위라는 낮은 작전 성공률을 보였고, 이는 팀 홈런 2위, 팀 득점 9위라는 결과를 낳았다.

비효율적인 타순 배치도 낮은 득점력에 한몫 했다. 발이 빠르다는 이유로 이명기, 고메즈 등 출루율이 낮은 선수가 상위타선에 배치되었고, 이 역시 중심타선 앞에 주자가 쉽게 쌓일 수 없게 만들었다.

감독이 잘해서 팀을 끌어올리기는 어렵지만 감독이 못해서 팀을 떨어뜨리기는 쉽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였다.

 

내년은?

김용희 감독과 이별하고 외국인 감독 트레이 힐만을 선임했다. 한국에 올 가능성이 있던 외국인 감독 중 최고 수준의 감독으로, 계약 금액도 2년 160만 달러로 연 평균으로 따지면 이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외국인 투수 켈리 역시 재계약 난항이 예상되었지만 빠른 협상으로 최종 확정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공격적인 투자로 스토브리그의 포문을 연 것이다.

SK의 투자가 여기까지인지, 이제부터 시작일지는 불확실하지만 아직까지는 긍정적이다. 의외의 선수들의 가능성을 많이 봤던 올해인 만큼, 김광현의 FA 계약과 좋은 외국인 선수의 계약만 잘 이루어진다면 2017년은 설레는 한 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06년 SK에는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들이 등장했고, 2007년에 그 선수들과 명감독이 우승을 일궈냈다. 과연 10년 뒤인 2016년과 2017년에도 똑같은 전설이 반복될 수 있을 것인가.

 

기록 출처: STATIZ

1 Comment

  1.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 쓰는 솜씨가 매우 훌륭한것 같아요 ^^!! 앞으로도 화이팅하세요 준호씨♡♡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