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투저 현상, 범인은 스트라이크 존이 아니다

[야구공작소 박기태] 2017시즌 KBO리그의 화두 중 하나는 스트라이크 존 확장이었다. 2014년부터 3년간 이어진 과도한 타고투저 현상을 완화하고, 이를 통해 투수들의 성적 향상과 경기시간 단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리그 차원의 결단이었다.

극약 처방의 효과는 미묘했다. 5월까지 경기당 득점은 4.89점이었다. 앞선 3년간 5.2점을 웃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득점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6월부터 다시 타고투저의 바람이 불었다. 경기당 득점은 5.58점으로 치솟았다. 결국 시즌 경기당 득점은 5.33점이 됐다. 1년 전의 5.61점보다는 낮았지만, 2년 전의 5.28점보다는 높았다. 타고투저 현상 완화는 실패로 돌아갔다.

경기시간 단축도 마찬가지였다. 4월 초에는 경기시간이 1년 전보다 13분이나 단축됐다며 설레발치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경기당 득점이 상승하면서 예년처럼 경기 시간도 다시 늘어났다. 2017시즌 평균 경기 시간(연장전 포함)은 3시간 21분으로, 2016시즌의 3시간 25분보단 짧았지만 2015시즌과 같았다. 비디오 판독 시간을 2분 안쪽으로 줄이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도로 타고투저’ 현상이 나타나자 언론과 현장은 스트라이크 존을 의심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시즌 중에도 스트라이크 존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차명석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몸쪽까지 넓어졌던 스트라이크 존이 위쪽과 아래쪽만 넓어지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¹. 6월 즈음부터 경기당 득점이 상승한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런 의심을 살 만하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랬을까.

¹ “[베이스볼 브레이크] ‘S존 다시 좁아졌다!’ 현장반응의 진실은”, 스포츠동아 2017년 6월 8일(링크)

 

스트라이크 존은 여전히 넓었다

현장의 말대로 스트라이크 존은 시즌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작아졌다. 그럼에도 시즌 후반의 스트라이크 존은 여전히 2016시즌보다도 컸다. 그것도 상당한 격차로.

아래 그림은 2016시즌(6월 중순부터 종료 시점까지), 2017시즌(시즌 시작부터 5월까지), 그리고 2017시즌(6월부터 시즌 종료까지)의 스트라이크 존을 비교한 것이다(2016시즌 데이터는 6월 중순 이후의 것만 찾을 수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은 위 그림에서 가로세로 1인치 크기의 녹색 박스로 표시된다. 여기서는 헛스윙, 파울, 타격을 제외하고 구심이 판정했을 때 스트라이크일 확률이 50%가 넘는 영역을 스트라이크 존으로 판단했다. 이 기준 하에 스트라이크 존의 크기는 2016시즌 489 제곱인치, 2017시즌 5월까지 598 제곱인치, 2017시즌 6월부터 577 제곱인치로 변해왔다. 2017시즌 전체 평균은 579 제곱인치.

구체적으로 그림을 살펴보자. 지난해 차명석 해설위원이 말한 것처럼, 2016시즌과 비교했을 때 2017시즌 스트라이크 존은 상단 경계선이 큰 폭으로 넓어졌다. 하지만 좌우 경계선도 소폭 확장됐다. 세가지 기간에 따라 스트라이크 판정 확률을 나타낸 히트맵(heatmap) 그림을 연속해서 보면 차이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데이터를 보면 현장에서 ‘스트라이크 존이 다시 작아졌다’고 얘기한 2017시즌 후반기에도 여전히 2016시즌보다 스트라이크 존이 넓었음을 알 수 있다. 기준을 50%가 아니라 75%로 높여도 결과는 같았다. 위와 같이 3가지 기간을 나눠서 구한 스트라이크 존 넓이는 각각 366-456-440 제곱인치였다. 2017시즌 전체 평균은 440 제곱인치였다.

정말로 스트라이크 존이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 폭은 미미했다. 처음에 워낙 큰 폭으로 존이 넓어졌다 보니 현장에서는 조금의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넓어진 존, 타고투저에는 영향이 없었나

그렇다면 스트라이크 존의 확대가 경기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은 걸까. 데이터는 다시 미묘한 이야기를 한다. 2017시즌 경기당 득점은 5.33점으로 2016시즌의 5.61점보다 줄어들었다. 존 확장이 효과를 봤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2015시즌 경기당 득점은 5.28점으로 지난해와 비슷했다. 그리고 2016시즌 대비 0.28점의 변동은 KBO리그 역사에서도 평범한 수준이었다. 즉, 득점 추이만 봐서는 존 확장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세부적인 지표에서는 달라진 점이 하나 눈에 띈다. 볼넷이 극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BB%(타석당 볼넷 허용률)는 2008년 10.2%로 정점을 찍은 이래 10년 가까이 9% 이상을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7.9%로 급격히 하락했다. 1983년의 7.8% 다음으로 낮으며, 2006년 8.6%를 기록한 이래 처음으로 나온 9% 미만 기록이다. 투수들이 스트라이크를 던질 확률이 늘어난 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볼넷이 줄어들면 실점 확률도 줄어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당 득점은 줄어들지 않았다. 2017시즌의 경기당 5.33점은 KBO리그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렇다면 볼넷 이외에 득점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시즌의 경우 BABIP(인플레이 타구의 타율)와 홈런을 득점 상승의 원동력으로 볼 만하다.

지난 시즌 리그 BABIP는 0.327로 KBO리그 역대 3위를 기록했다. BABIP가 높다는 것은 곧 안타의 대량 생산을 의미하며 이는 득점 가능성 상승으로 이어진다. KBO리그에서 BABIP와 경기당 득점의 결정 계수(R²)는 0.72로 매우 높은 편이었다. 반면 BB%와 경기당 득점의 결정 계수는 0.19에 불과하다. 즉, BB%보다는 BABIP가 시즌 득점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는 뜻이다. 따라서 볼넷이 줄어들어도 높은 BABIP가 유지된다면 타고투저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맞아떨어진 결과가 볼넷은 줄었지만 안타 수는 그대로였던, 그리고 타고투저 현상이 이어졌던 2017시즌이다.

최근 타고투저 현상이 시작된 2014시즌부터 KBO리그는 전례없이 높은 BABIP를 기록하고 있다. 2009시즌 0.310, 2013시즌 0.314를 기록한 BABIP는 2014시즌부터 매년 0.330 가량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시즌에도 높은 BABIP가 유지됐다는 건 스트라이크 존 조정으로는 리그 BABIP를 임의로 조정하기 힘들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내년에도 넓은 스트라이크 존이 이어진다 한들 타고투저 현상을 막을 수는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림 가운데 안쪽 흰 선으로 된 사각형의 좌우 폭은 홈 베이스의 좌우 폭과 같다. 야구 규칙대로라면 그 밖으로 나간 공은 볼이지만, KBO리그에서는 심심찮게 스트라이크가 된다.

 

스트라이크 존, 어떻게 해야 할까

야구 규칙에는 스트라이크 존의 모양이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다. 스트라이크를 최종적으로 판정할 권한은 구심에게 있지만, 구심은 규칙을 판정의 기준으로 삼는다.

규정에 정해진 스트라이크 존의 좌우 경계선을 홈 베이스의 좌우 경계선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KBO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은 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 홈 베이스의 좌우 넓이에서 공 하나, 이따금 두 개씩 벗어난 공도 스트라이크로 판정되는 일이 잦다. 그렇게 규정을 어긴 이유는 하나, 타고투저 현상 해소를 위함이다. 그러나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고 남은 것은 기이한 판정뿐이다.

스트라이크라고 보기엔 뭔가 애매했던 공들이지만 모두 스트라이크 선언이 됐다. 2017시즌에는 이런 장면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앞서 찾아본 대로 타고투저 현상은 높은 BABIP 기록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 확장은 BABIP 억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이대로라면 2018시즌에도 타고투저 현상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뒤집어 말하자면 존을 다시 줄여도 이 이상 득점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어차피 득점력에 차이가 없을 거라면, 존을 다시 규정에 가깝게 돌려놓는 건 어떨까. 리그에 따라서 스트라이크 존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지만 위 사진처럼 타석에 걸치는 공까지 스트라이크가 되는 존은 우리가 알아온 야구와는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기록 출처 : STATIZ

에디터=야구공작소 이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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