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다가온 두산의 엑소더스

(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원영)

 

[야구공작소 차승윤] 2017시즌 준우승에 그친 두산의 우승 도전은 2018시즌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기존 선수들의 건재함과 새로운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했기 때문이다. 2016년이 ‘플루크’가 아닐까 의심됐던 박건우는 2017년 더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 중견수의 역사를 새로 썼다. 장원준, 김재환 등 주력 선수들은 여전한 기량을 보여줬고 함덕주, 김강률, 류지혁 등은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여기에 지난 5년동안 네 번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두 번의 우승 경험은 두산을 2018시즌 우승 후보로 꼽기에 충분한 강점이다.

 

문제는 모든 강팀들이 마주했던 FA 엑소더스다. (참고: 왕조, 엑소더스의 역사) 왕조를 세웠던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가 그랬듯 두산 역시 구단을 힘겹게 하는 대형 FA들과 마주친 것이다. 두산은 2년 전 오재원과 지난해 김재호, 이현승 등 세 명의 준척급 내부 FA를 모두 붙잡으면서 우승을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형 FA 선수가 걸린 올해 두산의 반응은 예년과 달리 미지근했다. 군 전역 이후 잠실의 우익을 담당해온 민병헌, 해외에서 돌아온 두산의 역대 최고 프랜차이즈 스타 김현수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적을 택했다. 내년에 다시 두산은 KBO ‘포수 최대어’인 양의지, 이적 후 에이스로 활약한 장원준의 두 번째 FA와 마주쳐야 한다. 두산은 이들을 잡을 수 있을까? 잡지 못한다면, 두산의 우승 도전도 이대로 끝나버릴 것인가.

 

FA를 놓칠 수밖에 없는 두산: 모기업의 사정

 

지난 2015년 두산그룹은 신입사원 해고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뉴스에 이름을 올렸다. 2000년대 이후 중공업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끌어온 대규모의 부채가 문제였다. 2008년도 금융위기로 인해 실적 하락과 자금 유동성 위기를 맞은 데 이어 두산건설의 부진, 만기가 다가오는 1조 이상의 부채, 탈원전 이슈로 인한 두산중공업의 타격 등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두산그룹은 자금을 구하기 위해 계열사까지 팔아가며 버티고 있지만 앞날이 긍정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모기업의 상황은 스토브리그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민병헌은 “오버 페이 하지 않겠다”는 두산 김태룡 단장의 코멘트와 함께 협상 결렬을 발표했고, 김현수는 두산으로부터 금액 제시조차 받지 못한 채 ‘잠실 라이벌’ LG로 이적을 택했다. 물론 두산이 FA에 거액을 써온 구단은 아니었다. 다만 지난해까지 장원준·오재원·김재호·이현승에 거액을 투자했기 때문에 향후 FA도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대형 FA들을 모두 놓치면서 대형 FA 한 명 잡을 돈으로 괜한 준척급 여럿만 잡아들인 모양새다.

FA를 놓쳐도 되는 두산: 자신 있는 육성, 충분한 대체재

 

두산의 화수분은 이번에도 두 프랜차이즈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이미 두산은 이종욱·손시헌·최준석을 한꺼번에 내보내고도 민병헌·오재일·김재환·김재호·박건우의 등장으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다. 당시 두산은 FA를 앞둔 선수들의 대체를 이미 진행시킨 상황이었다. 2013시즌 당시 손시헌과 최준석의 비중은 줄어든 반면 민병헌·오재일·김재호가 기회를 받아 주전급으로 도약했다. 팀의 빠른 대비로 공백의 흔적조차 느낄 수 없었다.

 

두산은 이번에도 두 선수의 공백을 대비해 놓았다. 2015년 4번째 우승을 달성했을 당시 두산 외야진은 김현수와 민병헌, 정수빈이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풀타임 외야수로 시즌을 소화한 박건우는 이미 민병헌을 능가하는 타자다. 그는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며 2017년엔 베어스(두산, OB 포함) 최초로 20홈런 20도루를 달성했다. WAR 7.03을 기록한 박건우의 올 시즌은 역대 중견수 최고 시즌으로 꼽아도 부족함이 없다.

 

김현수의 자리 역시 김재환이 완벽하게 대체 중이다. 2년 연속 3할-35홈런-100타점-OPS 1.0을 기록한 김재환은 타격에서 김현수의 완벽한 상위호환이다. 물론 약물 이슈가 있지만 내년에 겨우 풀타임 3년차에 불과한 김재환의 긴 서비스타임, 비교적 저렴한 연봉(2017년 2억원)과 더욱 우월한 타격 능력은 두산이 김현수를 포기할 근거가 될 만하다.

 

오히려 두 선수를 모두 잡았다면 두산은 200억을 쓰고도 포지션 중복 문제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재환과 김현수의 포지션 중복을 해결하기 위해 한 명을 1루로 옮기려 해도 1루에는 오재일이 버티고 있다. 결국 지명타자에 100억을 쓰는 꼴이 된다. FA 계약 기간 동안 1루/지명 자리가 채워져 외인 타자를 구하기 어려운 것 역시 문제다.

 

물론 지난 2년처럼 박건우와 김재환에 민병헌, 혹은 김현수까지 붙잡아 최상의 외야진을 구성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두산은 2015년 김재환이 각성하기 전에 이미 시즌 3위와 한국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 다가오는 정수빈의 전역과 두산 팜의 외야 유망주 상황, 그리고 성공한 전력을 생각해보면 외야 한 자리의 공백 정도는 감당해볼 만하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FA를 모두 놓친 뒤의 두산은

 

외야에 생긴 빈 자리를 누가 메울지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역시 군 복무 중인 중견수 정수빈이다. 정수빈은 2014년 시즌 타율 3할에 2015년에는 한국시리즈 MVP까지 수상하며 활약했다. 하지만 2016시즌 부진과 박건우의 활약에 밀리며 주전 중견수 자리를 내주고 입대한 상태다. 마지막 시즌에 부진했지만 본래 주전급이었던 만큼 차기 주전 자리가 유력하다. 올해 퓨처스 리그에서도 0.324/0.405/0.504를 기록한 정수빈은 군 복무를 마친 올해 말, 혹은 내년 복귀가 예정된 상태다. 정수빈의 가장 큰 문제는 당장 FA가 눈앞인 자원이라는 점. 민병헌이나 김현수처럼 대형FA는 아니지만 장기 가용 자원이라 보기는 어렵다.

 

두 번째 후보군은 1군 백업 요원으로 얼굴을 비춘 정진호, 국해성, 조수행이다. 2016시즌 퓨처스 리그에서 좋은 모습(0.344/0.431/0.513)을 보인 정진호는 2017년 1군에서 97경기 타율 0.283 OPS 0.780 WAR 0.67와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직 풀타임을 소화한 적은 없어 풀 시즌 검증이 필요하긴 하다.

 

기록에선 밀리지만 각각 장타 툴과 주루 툴에서 월등한 국해성과 조수행 역시 기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해성은 2017시즌에는 OPS 0.630으로 부진했지만 2016시즌엔 OPS 0.798, wRC+ 107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인 자원이다. 한편 2017시즌 80경기 52타석의 기회를 받았던 조수행은 두산에서도 손꼽히는 주력을 지닌 자원이다.  퓨처스에서도 37경기 17도루를 기록하며 건국대 재학시절 90경기 92도루의 준족이 여전함을 증명했다.

 

이밖에 퓨처스 리그에서 꾸준히 60경기 이상 기회를 받고 있는 김인태, 이우성, 김진형도 대기하고 있다. 이들이 퓨처스에서 4할 맹타를 기록하던 박건우, 민병헌이나 퓨처스 100타점과 사이클링 히트 2회를 기록한 김재환 수준의 활약을 보여줄 거라 기대하긴 힘들다. 하지만 두산이 언제나처럼 ‘가을야구 단골손님’의 명성을 이어가기에 충분한 자원들로서 비어 있는 한 자리를 놓고 다툴 것으로 보인다.

 

두산, 왕조의 경계에서

 

2013년 이후 5년동안 두산은 한국시리즈 4회 진출, 2회 우승의 황금기를 누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왕조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세 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시점에서 두산은 대형 프랜차이즈 스타 두 명을 잡지 않았다.

 

잡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내린 두산의 선택은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까. 현실적으로 2016년의 압도적인 우승을 재현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2015년의 가을을 재현하기에는 여전히 두산의 전력은 충분하다. 물 오른 두 명의 MVP급 외야수, FA로이드 시즌을 맞이한 좌완 에이스와 포수 등 2018 두산은 긍정적인 기대요소로 가득하다. 다가오는 2018시즌, 과연 두산은 기적적인 우승을 재현하고 왕조의 위(位)를 차지할 수 있을까.

참고 자료: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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