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17시즌 리뷰] 필라델피아 필리스 –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 미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황규호)

 

팬그래프 시즌 예상: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4위(71승 91패)

시즌 최종 성적: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5위(66승 96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송동욱]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2016시즌을 보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겨울은 분주했다. 제레미 헬릭슨과 QO(퀄리파잉 오퍼) 계약을 맺으며 기존 전력을 지키는데 힘 썼고, 유망주들의 성장을 위한 ‘스탑갭(임시방편)’을 영입하며 팀의 다양한 약점들을 보강해 나갔다.

젊은 선수들이 주를 이룬 타선에는 베테랑 외야수 마이클 손더스(1년 800만달러)와 경험 많은 다니엘 나바(스프링캠프 초청선수)를 영입했다. 부진했던 놀라와 기대 이상의 아익호프라는 웃기도 울기도 애매한 선발진에도 클레이 벅홀츠(트레이드)의 이름을 추가시켰다.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불펜에는 펫 니섹(트레이드)을 데려와 경험과 약점을 보완했다.

하지만 시즌 개막 2주 만에 팔꿈치 손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한 벅홀츠를 시작으로 이러한 영입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손더스는 전반기 최악의 부진(61경기 OPS 0.617)을 거듭하다 6월 18일을 끝으로 지명할당처리 되었고 다니엘 나바는 나쁘지 않은 성적(OPS 0.813)을 기록했지만 등과 햄스트링 부상으로 꾸준히 출장하지 못했다. 당연히 팀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필라델피아는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유일하게 전반기에 30승을 거두지 못했다.

 

키 포인트 – 각성한 타선의 코어 유망주들, 리스 호스킨스의 강렬한 데뷔

생각보다 팀의 부진이 길어지자 프런트는 마이너리그의 타자 유망주들을 한 템포 빠르게 데뷔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옳았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닉 윌리엄스를 시작으로 포수 유망주 호르헤 알파로가 그 뒤를 이었다. 데뷔 후 18경기 11홈런이라는 신기록을 작성한 리스 호스킨스는 유망주들의 성공적인 데뷔에 정점을 찍었다.

임시로 거쳐가는 선수들이 아니라 팀과 미래를 함께할 선수들이 라인업에 늘어나기 시작하자 팀도 긍정적인 분위기를 탔다. 5월과 6월 15승 40패를 기록하던 팀은 7월 처음으로 월간 승률 5할을 넘겼다(13승 12패). 득점보다 실점이 100점 가량 많았던 전반기와는 달리 후반기에는 득실차가 0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타선의 발전이 돋보였다. 전반기 동안 0.698(NL 13위)를 기록했던 팀 OPS는 후반기에 0.753 (NL 6위)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야수 유망주들의 성공적인 데뷔가 기록으로도 증명된 것이다.

투타 균형이 맞아들어가자 자연스레 이기는 경기들이 늘어났다. 이에 필라델피아는 다저스와의 4연전을 포함한 시즌 마지막 12경기를 8승 4패로 장식하며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1픽 레이스’에서 3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팬들에게는 1픽보다 팀의 미래를 함께할 유망주들의 동시다발적 폭발이 더 값지게 느껴졌을 것이다.

 

최고의 선수 – 애런 놀라

시즌 성적 27경기 168이닝 12승 11패 ERA 3.54 FIP 3.48 49볼넷 184삼진 Fwar 4.3

<크리스 세일의 우완 버전이라는 평가를 듣는 놀라의 독특한 투구폼>

지난해 초반 놀라의 질주는 무서웠다. 놀라는 지난해 6월 11일 워싱턴과의 경기 전까지 7승, 2.65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차기 에이스의 등장을 알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8번의 선발등판 동안 1승 5패 ERA 9.82를 기록하는 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해와 달리 올 시즌에는 좋은 모습이 더 길었다. 5.0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첫 6경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21번의 선발등판 동안 11승과 3.18의 평균자책점, 그리고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3.08(ML 전체 9위)을 기록하며 리그 에이스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활약을 보였다.

호투의 비결은 증가한 구속에 있다. 대학 시절부터 다소 느린 구속으로 지적 받던 놀라는 1년 만에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을 1.9마일(3.04km/h)이나 끌어 올리며 이제는 마냥 느리다고 할 수 없는 평균 구속 92마일(148.06km/h)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가 됐다.

위력이 상승한 패스트볼은 커브와 체인지업 위력의 동반 상승이라는 연쇄 작용을 일으켰다(커브 구종가치 전체 2위, 체인지업 15위). 덕분에 포심과 커브밖에 없는 단조로운 투수라는 평가를 받던 놀라는 올 시즌 체인지업이라는 확실한 무기 하나를 장착하게 됐다.

놀라가 너무 빨리 방전된 2016년과 초반에 부진했던 2017년 사이에서 페이스를 잘 조절할 수만 있다면 필라델피아 선발진의 확실한 에이스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올 시즌 놀라는 충분히 그런 기대를 받을 만한 활약을 보여줬다.

 

아쉬운 선수 – 제라드 아익호프

시즌 성적 24경기 128이닝 4승 8패 ERA 4.71 FIP 4.30 53볼넷 118삼진 FWAR 1.9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가장 아쉬웠던 선수로 꼽기에는 너무 좋은 성적일 수도 있지만 아익호프는 작년 필라델피아 최고의 선수였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컸다. 지난해 아익호프는 무너진 투수진에서 제 몫을 다해줬으며 실패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던 해멀스 트레이드의 마지막 면죄부이기도 했다.

아익호프가 놀라와 동반 활약을 보여줬다면 필라델피아의 올 시즌은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스프링 캠프 때부터 시작된 부상이 문제였다. 손가락에 금이 가 전력에서 이탈했던 아익호프는 시즌 도중 발목 부상과 어깨 피로를 호소하며 128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부상의 여파는 강점이었던 커맨드에 악영향을 끼쳤다. 아익호프가 2016시즌 9이닝당 1.92개의 볼넷만을 허용하며 안정적인 경기운영 능력을 보여준 것과 달리 올 시즌에는 그 수치가 2배에 가까운 3.73개까지 늘어났다. 거기에 불운까지 겹쳐 아익호프는 전반기 마지막 등판인 7월 10일이 되어서야 시즌 첫 승을 챙길 수 있었다.

결국 시즌 내내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아익호프는 9월 3일 어깨 통증으로 시즌아웃을 선언했고 일찌감치 2018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다행히 부상에도 불구하고 아익호프의 구위는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2016시즌 포심 평균구속 91.4마일(147.09km/h) → 2017시즌 90.3마일(145.32km/h)). 다만 아익호프의 2016년이 플루크로 밝혀진다면 필리스의 투수진 구성은 생각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

 

가장 발전한 선수 – 애런 알테어

시즌 성적: 0.272/0.340/0.516 0.856, 19홈런 65타점 32볼넷 104삼진 Fwar 1.3

독일 태생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알테어는 남다른 피지컬(196cm/97kg)을 토대로 좋은 운동신경을 지닌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실제로 2015년에는 39경기 동안 0.827의 준수한 OPS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알테어는 작년 시범경기 도중 손목 골절 부상을 당하며 페이스가 꺾였고 아쉬운 성적만을 남겼다(57경기 0.197).

올해 알테어는 처음으로 메이저 레벨에서 100경기 이상을 소화하며 건강할 때 본인이 어떻게 팀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는 홈런과 타점에서 팀 내 3위, wRC+는 120으로 팀 내 2위를 기록했다(200타석 이상/1위 호스킨스). 수비력 측면에서는 좋지 않은 수치(Drs -4)에도 외야 3곳을 전부 맡을 수 있다는 강점을 입증했다.

시즌 중반 햄스트링 부상으로 DL에 2번이나 오른 건강 상태에는 아직 의문 부호가 붙는다. 그렇지만 아직 성장 가능성이 있는 91년생의 젊은 선수임을 감안하면 필라델피아는 확실한 코어 선수를 한 명 더 발굴하게 된 셈이다.

 

총평 – 마지막 우승으로부터 10년, 이제는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우승을 경험한 2008시즌 이후 내년이면 정확히 우승 10년째가 되는 필라델피아. 한때 30개 팀 중 가장 높은 연봉 총액을 기록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옛말이 되어 버렸다. 필라델피아는 연봉 총액을 성공적으로 줄여 나가고 있어 내년 연봉 총액은 39.2M로 예상된다. 이는 유례 없는 대란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는 2018 FA 시장에서 지갑을 열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올 시즌 필라델피아는 야수진의 구성이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컵스가 그러했듯 타이밍을 잘 맞춰 투수 쪽에서 대형 FA를 영입할 경우 한 번에 컨텐더 팀으로 올라갈 여지는 충분하다. 선발과 불펜을 가릴 것 없이 계산이 서지 않던 투수진이 조금은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6년 연속 PS 진출 실패라는 긴 터널에서 이제 조금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 종소리가 울려 퍼질 날은 그리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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