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이적’ 김현수, 여전한 난관들

Hyun Soo Kim

[야구공작소 박기태] 김현수가 볼티모어를 떠났다. 29일(한국 시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김현수, 제레미 헬릭슨 등이 포함된 1: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볼티모어 get: 제레미 헬릭슨(우완 선발, 30세)
필라델피아 get: 김현수(외야수, 29세), 개럿 클레빈저(좌완 투수, 23세), 국제 아마추어 계약금 한도 추가

이 트레이드의 핵심은 제레미 헬릭슨이다. 김현수와 국내 팬들에겐 아쉬운 소식일 수도 있지만, 골자는 선발 투수 기근에 시달렸던 볼티모어의 전력 보강이다. 헬릭슨은 올해 20경기에서 4.73의 ERA를 기록 중인데, A급 선발의 성적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볼티모어 선발진 중에 헬릭슨보다 ERA가 낮은 선수는 딜런 번디 한 명 밖에 없다. 그 정도로 볼티모어의 선발 로테이션 상황이 심각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는 헬릭슨은 시장에 나와있는 선발 중 가장 몸값이 저렴한 축에 속했다. 당장 선발진 사정이 급하고 포스트시즌 경쟁과 거리가 먼 볼티모어에게 안성맞춤인 매물이었다.

필라델피아 입장에선 헬릭슨으로 조금이라도 대가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할만한 거래였다. 개정된 노사협약(CBA) 탓에, 필라델피아는 시즌 후 헬릭슨 이적의 대가로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아올 수 없었다(헬릭슨이 지난해 퀄리파잉 오퍼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필라델피아가 올해는 퀄리파잉 오퍼를 제시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헬릭슨으로 무언가 ‘대가’를 받기 위해선 지금 트레이드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김현수에 초점을 맞춰보자. 결론부터 말해 김현수의 입지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필라델피아 입장에서도 큰 활약을 기대하고 데려온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볼티모어가 헬릭슨의 연봉 보조를 위해, 그리고 로스터 인원 정리를 위해 김현수를 보낸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필라델피아는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내셔널리그 소속이기 때문에, 김현수가 뛸 수 있는 포지션은 사실상 코너 외야수로 제한된다. KBO리그에서 1루수로 나선 적도 있지만 너무 오래 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해당 포지션에서 뛰는 김현수의 경쟁자들은 이미 단단한 입지를 다져놓았다.

아론 알테어는 80경기에서 0.902의 OPS를 기록하며 중심 타선에 자리를 잡았다. 최고 유망주 출신 닉 윌리엄스는 콜 해멀스 트레이드의 유산으로, 22경기에서 OPS 0.929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필라델피아는 현재 두 선수를 주전 코너 외야수로 출전시키고 있다. 김현수를 중견수로 내보낼 리는 없겠지만 남은 한 자리를 이야기하자면, 출중한 수비 실력을 자랑하는 오두벨 에레라가 팀의 붙박이 중견수로 계속해서 출장하고 있다.

알테어는 91년생, 윌리엄스는 93년생으로 김현수보다 2살 이상 어린 선수들이다. FA 자격 취득까지 남은 시간도 훨씬 길다. 팀의 입장에서 볼 때, 미래를 위해선 올해를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 김현수보다는 이 두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합당하다. 이런 경기 외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미 주전으로 훌륭하게 자리잡고 있는 두 명의 출전 시간을 줄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결국, 김현수는 볼티모어 시절과 마찬가지로 ‘제 4의 외야수’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뻔했던 하위 켄드릭은 김현수의 이적 1시간 전 워싱턴으로 트레이드됐다(시간 순서 상 두 거래는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남은 외야 경쟁자는 현재 햄스트링 부상으로 10일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어 있는 다니엘 나바다. 나바는 주로 경기 중 대타 등의 교체 요원으로 활약해왔다. 필라델피아가 기대하는 김현수의 역할도 나바와 비슷할 것이다.

윌리엄스는 김현수와 같은 좌타자고, 알테어는 우투수 상대로 더 잘 치는 우타자다. 플래툰 시스템의 틈새를 노리기엔 상황이 녹록치 않다. 그래서 김현수의 당면 과제는 ‘나바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34세 베테랑 외야수 나바는 올해 180타석에서 0.303/0.400/0.408의 타율/출루율/장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전반적인 성적이 김현수보다 우위에 있고, 김현수의 강점인 출루율에도 부족함이 없다. 즉, 김현수가 나바에게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나바의 복귀가 닥쳤을 때 김현수의 자리가 남아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나바의 복귀 시점에 맞물려 김현수가 DFA(양도선수공시)될 가능성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과거에도 트레이드된 선수가 DFA된 적이 있었다. LA 다저스가 후안 유리베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보내고 데려온 알베르토 카야스포를 3달 뒤 방출한 사례가 그 예시다. 이 당시 다저스가 카야스포를 데려간 것은 전력 보강보다는 유리베의 연봉을 보조하기 위한 성격이 더욱 짙었다(유리베 연봉 650만 달러, 카야스포 연봉 300만 달러). 카야스포의 방출까지는 3달이 걸렸지만 방출 시점은 8월 27일이었다. 지금은 7월 29일이다. 필라델피아에게 메이저리그에서 시험하고 싶은 마이너리거가 생긴다면 김현수가 방출을 당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기다.

우연이 겹치고 겹쳐 여기까지 이르렀다. 지난해 훌륭한 성적을 냈지만, 자신보다 어린 선수의 대활약 탓에 김현수는 강력한 정신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그 압박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내는데 실패했다. 아쉽지만 새로운 환경도 썩 나은 편은 아니다. 과연 김현수는 바늘구멍 같은 기회를 다시 뚫어낼 수 있을까.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SA 2.0)

(감수: 도상현 송동욱 임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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