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레전드’ 푸홀스가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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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4일,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3번 타자로 출장한 마크 맥과이어는 1회 말, 스티브 트랙슬을 상대로 선제 솔로홈런을 쏘아 올렸다. 맥과이어의 시즌 65호 홈런이자 통산 522호 홈런이었다. 맥과이어는 이 홈런으로 테드 윌리엄스와 윌리 맥코비를 밀어내고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부문 단독 10위에 올라섰고 2001년 통산 583번째 홈런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1999년으로부터 17년이 지난 올 시즌 맥과이어의 뒤를 이어 세인트루이스의 대표 타자로서 메이저리그에 군림했던 알버트 푸홀스(36)가 드디어 자신의 우상을 넘어섰다. 앞서 뉴욕 양키스의 델린 베탄시스를 상대로 홈런을 날리며 맥과이어와 이름을 나란히 했던 푸홀스는 지난달 25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1회 초 마르코 에스트라다의 2구째를 받아치며 584호 홈런을 기록, 통산 홈런 부문 10위에 홀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 푸홀스는 홈런 6개를 더 추가하며 프랭크 로빈슨을 제치고 통산 홈런 부문 단독 9위에 올라 있다.

 

푸홀스의 위대한 전성기

푸홀스는 이미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다. 1999년 드래프트에서 13라운드에 지명된 푸홀스는 2001년 맥과이어의 강력한 추천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타율 .329 37홈런 130타점을 기록,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한 번의 타격왕(2003)과 타점왕(2010) 그리고 두 번의 홈런왕(2009, 2010)을 차지한 푸홀스는 정규시즌 MVP를 3회 수상(2005, 2008, 2009)하며 배리 본즈(7회), 알렉스 로드리게스(3회) 등과 함께 MVP 시즌을 3회 이상 만들어낸 선수가 되었다.

MVP 3회 이상 수상한 메이저리거
1. 7회 배리 본즈
2. 3회 지미 폭스, 조 디마지오, 스탠 뮤지얼, 요기 베라, 로이 캄파넬라, 미키 맨틀, 마이크 슈미트, 알렉스 로드리게스, 알버트 푸홀스

 

푸홀스의 전성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10년 연속 3할 타율-30홈런-100타점’이다. 3할 타율-30홈런-100타점 시즌을 10회 이상 만들어낸 선수는 푸홀스 외에도 베이브 루스(12회)와 매니 라미레스(10회) 그리고 루 게릭(10회)이 있지만 10년 연속으로 달성한 선수는 푸홀스가 유일하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156경기에 출장해 .331/.426/.624 41홈런 123타점의 성적을 거둔 푸홀스의 b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은 81.2. 이는 같은 기간 활약한 메이저리거 가운데 가장 높으며 2위인 로드리게스(71.4)보다도 9.8이 더 높은 수준이다. 통산 100.9의 bWAR을 기록하고 있는 푸홀스는 메이저리그 야수 가운데 역대 20위에 올라있다.

 

실력과 인성 모두 최고

푸홀스는 경기장 밖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클레이튼 커쇼는 자신의 자서전(Arise)에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현역 선수는 푸홀스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이유는 푸홀스가 커쇼와 같이 독실한 기독교도일 뿐만 아니라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푸홀스는 많은 기부와 선행을 바탕으로 2008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푸홀스와 17년째 부부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디드레는 한 번의 이혼 전력이 있었다. 또한 디드레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딸인 이사벨라를 데리고 푸홀스와 결혼했는데 이사벨라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푸홀스는 모든 것을 감내하고 디드레와 결혼했으며 친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사벨라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기쁘다고 말한다.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아동들을 어느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는 푸홀스는 관련 행사에 기꺼이 참여함과 더불어 많은 기부를 하고 있다. 또한 가족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후원 활동을 지금까지 활발하게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홈런 더비 최고의 명장면은 푸홀스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챔프 피더슨을 따뜻하게 안아준 장면이었다. 작 피더슨의 형인 챔프에게 최고의 선수는 바로 푸홀스였다. 때문에 챔프에게 있어서 자신의 동생과 푸홀스의 준결승은 꿈의 대결이나 마찬가지였다. 준결승이 동생의 승리로 끝나자 마자 챔프는 푸홀스에게 달려가 안겼고 푸홀스는 그런 챔프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이 장면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약물 혐의에서 자유로운 ‘청정 타자’

메이저리그에서 암페타민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2006년 금지약물로 지정된 암페타민이 메이저리그에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연고지를 서부로 옮긴 1950년대 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정경기의 이동거리가 급격하게 늘어남으로 인해 많은 선수들이 경기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로도가 증가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성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1990년대에는 스테로이드와 같은 경기력 향상 약물이 선수들 사이로 만연하게 퍼져갔다. 스테로이드로 인해 메이저리그는 스포츠 정신을 위배했고 맥과이어, 본즈, 로드리게스 등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유명 메이저리거들의 금지약물 혐의는 팬들에게 배신감을 주기 충분했다. 그러나 사무국은 금지약물에 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4년 선수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위기를 타파하고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당시 상황을 묵인하고만 있었다.

푸홀스는 금지약물을 사용한 선수들에 대한 배신감이 극에 달한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지금의 결과를 이뤄낸 푸홀스는 선수 생활의 일정 부분을 약물시대의 과도기 동안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유혹을 이겨냈다는 점에서 더욱 인정받고 있다. 유사한 커리어를 쌓은 선수들이자 2003년 전수조사에서 적발된 로드리게스와 데이빗 오티스로 인해 푸홀스가 더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세인트루이스 시절 이후 푸홀스의 성적은 분명 그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32세 시즌이자 LA 에인절스 이적 첫 해였던 2012년부터 올해까지 푸홀스는 .266/.325/.474의 아쉬운 슬래시라인을 기록하고 있다. 족저근막염 수술을 받았던 2013년에는 99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지난해에는 40홈런을 달성하긴 했으나 슬래시라인이 .244/.307/.480으로 타율과 출루율이 빅리그 데뷔 이후 가장 낮았다. 현재 30홈런 111타점으로 2012년 이후 4년만에 30홈런-100타점 시즌을 만들어냈지만 푸홀스는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성적을 기록 중이다(OPS .777/bWAR 1.4).

하지만 노쇠화에 따른 하락세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1월, 미국의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WAR(승리기여도)를 통한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메이저리거들이 27세 전후로 전성기를 맞이하며 그 이후로는 하락세가 시작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푸홀스는 부정한 방법을 통해 30대에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들과는 달리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올해 36세인 그는 정당한 방법을 통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대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푸홀스가 우리 시대 살아있는 레전드인 이유다.

 

기록 출처 : Baseball-Reference, Fangraphs, ESPN

야구공작소
박민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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