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KBO리그 외국인 선수 스카우팅 리포트 – 한화 이글스 카를로스 비야누에바

카를로스 비야누에바, 한화 이글스
선발투수, 우투우타, 187.9cm, 97.5kg, 1983년 11월 28일생

 

[야구공작소 박기태] 10여 번의 접촉, 그리고 10여 번의 거부. 한화 이글스는 2017년 알렉시 오간도와 짝을 이룰 외국인 투수 스카우트에 큰 난항을 겪었다. 지난해, 3월이 되어서야 급히 데려왔던 알렉시 마에스트리의 악몽이 떠오를 때쯤 마침내 비어 있던 한 자리를 채워줄 이름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오간도 못지않게 놀라운 이름, 카를로스 비야누에바였다.

 

배경

비야누에바는 오랜 시간 메이저리그에서 뛴 베테랑 투수다. 2006년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것을 시작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카고 컵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그리고 최근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까지 여러 팀에서 공을 던져왔다. 아메리칸리그, 내셔널리그를 가리지 않고 공을 던져온 그가 11년간 몸담은 보직은 ‘스윙맨’, ‘롱릴리프’였다. 비야누에바를 영입한 한화에서는 지난해 송창식, 심수창 등이 주로 맡은 그 자리다.

그도 처음부터 스윙맨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2년차였던 2007년 초반 밀워키의 스프링캠프에서 그는 밀워키의 5선발 자리를 두고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고, 그는 네드 요스트 감독의 지시 하에 불펜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선발 경쟁에서 탈락한 것은 아니었다. 시즌이 끝나가던 9월에는 5차례 선발로 등판해 30이닝 동안 ERA 2.10을 기록하는 등 선발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가능성은 가능성에만 그쳤고, 2009년까지 그는 계속 어중간한 이닝을 처리하는 마당쇠 보직을 소화했다. 2011년 토론토에서는 잠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고 2013년에는 컵스와 2년 FA 계약을 맺어 2013 시즌 초반 선발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결국 선발 보직은 ‘외도’에 불과했다. 11년 동안 그는 110번의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지만, 나머지 366번의 경기에서는 구원 투수로 나섰다.

2015년 생애 두번째 FA 자격을 얻은 비야누에바는 강팀 세인트루이스의 일원이 됐다. 주로 패전 처리 역할이었지만 35경기에서 61이닝을 던지며 2.95라는 생애 최고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보직의 특성과 나이, 세부 기록 등의 이유로 세인트루이스는 그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다시 FA가 된 비야누에바를 찾은 건 젊은 선수를 중심으로 리빌딩에 나선 샌디에이고였다.

비야누에바는 샌디에이고에서 익숙한 스윙맨 보직과 함께 젊은 투수들의 멘토라는 또다른 역할을 부여 받았다. 오랜 빅리그 생활, 다양한 팀에서 뛴 경험을 존중한 팀의 결정이었다. 비야누에바는 두 번째 역할에 금세 적응했다. 그러나 본연의 역할을 보여야 할 마운드에서는 1년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많은 안타와 홈런을 내주며 ERA가 5.96까지 치솟았고, 샌디에이고는 그를 다시 붙잡지 않았다.

시즌 후 비야누에바는 스프링캠프가 열리기 전까지 빅리그 구단의 계약 제시를 기다렸다. 하지만 1년 부진한 탓인지, 만족스러운 제안은 도통 들려오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 한화 이글스의 계약 제안을 받았지만, 3번의 FA 계약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기에 돈과 꿈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을 터. 2월 초까지 기다리는 장고 끝에 그는 결국 한국에서 커리어의 새 장을 열기로 결심했다.

<카를로스 비야누에바 메이저리그 기록>

 

스카우팅 리포트

2017년 한화의 1호 외국인 투수 오간도가 강속구, 스터프 유형이라면 비야누에바는 변화구, 제구력 유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시속 140km 초반대의 패스트볼, 시속 130km 초반대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시속 120km의 커브가 그의 레퍼토리다. 구속만 봐도 시속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마음껏 뿌리는 오간도와는 꽤나 다른 스타일이라는 것이 보인다. KBO리그에서 뛴 선수로 빗대면 오간도는 로저스, 비야누에바는 장원준이라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시속 140km 초반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확실히 느린 축에 속한다. 이것을 잘 아는 비야누에바는 다양한 구종을 섞어서 타자들을 상대해왔다. 최근 3년간 구종 배합을 살펴보면 포심 패스트볼의 비중은 30% 초반 수준이었고, 투심 패스트볼의 비중도 10% 초반 수준이었다. 대신 주무기인 슬라이더가 20~30%대, 체인지업과 커브가 10% 초중반 수준을 유지했다.

<비야누에바 최근 3년간 레퍼토리>

레퍼토리 분석에서 보듯이, 비야누에바는 폭발적인 스터프 대신 다양한 구종을 무기로 삼는 투수다. 느린 구속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것은 흔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해선 제구력이 뛰어나야 한다. 비야누에바는 이 점에선 확실한 능력을 갖고있다. 지난 3년간 그의 볼넷 허용률은 5.9%로 내셔널리그(3년간 내셔널리그에서 뜀) 평균인 7.9%보다 확실히 낮았다. 커리어 평균도 7.6%로 높지 않은 편이었다.

프리스비처럼 휘는 슬라이더도 느린 구속을 보완하는 무기였다. 비야누에바의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던 2015년, 타자들은 그의 슬라이더에 스윙을 할 때마다 40% 가까운 확률로 허공을 갈랐다. 리그 평균 슬라이더 헛스윙 비율은 34%에 가까우니 확실한 ‘위닝샷’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기반으로 느린 구속에도 불구하고 3년간 리그 평균 수준의 탈삼진 비율을 유지했다.

비야누에바는 타자들을 한번 정도만 상대하는 스윙맨으로 뛰면서 슬라이더를 유용하게 써왔다. 그러나 그는 원래 유망주 시절 체인지업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던 투수다. 투피치 투수인 동료 오간도보다 완급조절에는 더 앞선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선발 보직에 더 적합한 선수라고 봐도 좋다.

여기에 부상 이력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다. 오간도는 어깨와 팔꿈치 등 여러 부위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이력이 있다. 그러나 비야누에바는 2011년 잠시 팔꿈치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부상을 당한 적이 없다. 투수에게 가장 힘든 보직 중 하나인 스윙맨으로 11년을 지내면서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체력적인 불안 요소는 적어 보인다.

여기까지 보면 비야누에바는 전형적인 ‘여유가 넘치는 베테랑 투수’처럼 보인다. 11년에 걸친 빅리그 경력, 다양한 레퍼토리와 제구력까지. 하지만 그에게도 당연히 단점, 불안한 점은 존재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단점은 역시 느린 구속이다. KBO리그에서는 평균 시속 143km의 구속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타자들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비야누에바는 1983년생, 만 33세로 투수로서는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다. 여기서 더 구속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다행히 2016년에는 구속 저하의 징조는 없었다.

또 다른 불안요소는 지난해 기록이다. 2016년의 비야누에바는 거의 모든 면에서 낙제점 투수였다. 피홈런은 앞선 3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고 이닝당 한 개 꼴로 안타를 내줬다. 탈삼진 비율도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그렸다. 그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 이대로 성적이 반등하지 않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비야누에바의 불안요소 1 – 2016년 하락세>

계속해서 언급한 나이도 빼놓을 수 없다. 비야누에바가 마지막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던 것은 2013년이다. 4년 만의 선발 보직, 그것도 만 33세의 나이로 전환하는 것이다. 100구 가까이 투구수가 늘어났을 때 그가 구속과 구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마지막 불안요소는 보직에 따른 기록이다. 비야누에바는 선발보다 구원으로 뛸 때 기록이 더 좋은 투수였다. 커리어 내내 선발로서는 5.0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반면, 구원으로서는 3.7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탈삼진, 볼넷 허용률과 피안타율 등 세부지표에서도 불펜일 때가 더 좋았다. 경기 후반, 타자들의 눈에 공이 익숙해질 때 어떤 식으로 경기를 풀어갈지가 관건이 될 듯하다.

<비야누에바의 불안요소 2 – 선발/불펜 기록 차이>

한편, 최근 외국인 선수의 조건으로 급부상한 인격적인 면모에선 쉽게 합격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메이저리그 5개 구단에서 뛰면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고, 샌디에이고에서는 젊은 투수들의 멘토이자 불펜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스스로 선수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을 자각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내년엔 어디서 뛰고 있을지 모른다’고 했던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말만 봤을 때, 머나먼 이국 생활에 대해 단단히 준비가 되어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전망

구속만 보면 비야누에바의 성공을 점치긴 쉽지 않다. 최근 3년간 시속 143km 이하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을 기록하고 성공을 거둔 외국인 투수는 거의 없었다(구속 – 스탯티즈 기준). NC의 에릭 해커, 롯데의 브룩스 레일리, 넥센의 앤디 밴해켄, kt의 라이언 피어밴드 정도뿐이다.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한다는 점에서는 해커를 비야누에바와 비슷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산하 트리플A의 평범한 선발 투수였던 해커는 한국에서 투구 동작을 개선하고 주자 견제 능력을 보완하면서 리그 최고의 투수가 됐다.

하지만 구속과 구종이 아닌 메이저리그 & 마이너리그 커리어를 기준으로 보면 위의 투수들은 비야누에바와 비교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비야누에바처럼 11년을 메이저리그에서 버티기는 고사하고 1년도 풀타임으로 뛴 투수들이 없었다. 이 점이 비야누에바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다. 선명한 약점을 지녔음에도 오랜 시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확실한 이유가 있을 거란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느린 구속’이란 약점이 KBO리그에서는 덜 부각된다는 점도 비야누에바에게는 호재다.

한편 지난 시즌의 부진이 우려를 낳긴 하지만, 이를 불운의 여파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존재한다. 지나치게 높았던 BABIP(0.319)와 플라이볼 중 홈런 비율(HR/FB%, 21.0%)이 그것이다. 두 지표는 모두 투수의 실력에 상관없이 커리어 내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비야누에바의 커리어 BABIP는 0.288, HR/FB%는 11.8%였기 때문에 지난해 부진을 일시적인 슬럼프 혹은 불운으로 볼 여지도 있다.

결국 관건은 MLB와 다른 KBO의 스트라이크 존과 KBO 타자들의 특성을 비야누에바가 얼마나 빨리 간파하느냐다. MLB보다 좌우로 넓은 스트라이크 존은 비야누에바의 슬라이더에 플러스 요소가 될 수 있다. 파워는 떨어지지만 외국인 투수 상대로 컨택트(타율이 아니라)를 강조하는 리그 특성은 지난해 피홈런 공포증에 시달렸던 그에게 약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비야누에바의 최대 기여도가 리그 에이스 수준이 될지는 미지수다. 아무래도 뒤떨어지는 스터프를 가진 투수에게 ‘탈삼진 기계’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부상 이력과 제구력 이슈로 약간의 물음표를 달고 있는 오간도와 달리 비야누에바는 최소한 ‘기본’은 해 줄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오랫동안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한화 선발 로테이션의 확실한 한 자리가 그것이다.

참조: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Baseball Savant, San Diego Tribune

(일러스트=야구공작소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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