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의 영건 3인방, 새로운 매직을 기대한다

[야구공작소 김형준] 2014시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존 레스터와 제프 사마자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올인’했지만 와일드카드 단판승부에서 캔자스시티 로얄스에 패배하였다. 전력질주의 여파였을까. 그들은 지난 2년간 68승, 69승을 거두는 데 그치며, 오클랜드로 연고지를 옮긴 후 처음으로 2년 연속 70승 미만을 기록하는 수모를 겪었다.

마무리 라이언 매드슨이 지키는 뒷문은 불안했으며, 컴백하여 2루를 지킨 제드 라우리는 에릭 소가드와 생산력이 다를 바 없었다. 놀라운 2015시즌을 보내며 기대를 모았던 빌리 번즈는 부진 끝에 헐값에 트레이드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선발 로테이션의 붕괴였다. 에이스 소니 그레이는 부상 및 부진으로 22경기 등판하여 5승 11패 5.6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데에 그쳤다. 개막전 로테이션 멤버 중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선수는 켄달 그레이브먼 뿐이었으며, 5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선수가 14명이나 될 정도로 돌려막기에 급급했다.

이 정도로 부실한 로테이션 구성은 ‘머니볼 신화’의 빌리 빈이 구단을 운영하는 방식과 거리가 멀다. 그는 1998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으로 취임한 후로부터 유능한 영건 투수들을 핵심으로 탄탄한 로테이션을 구성(설계)해왔다. 그 시작은 팀 허드슨–마크 멀더–배리 지토의 ‘영건 3인방’이었다. 그들은 2시즌 동안 113승을 합작하며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의 황금기를 이끈 바 있다.

뒤이어 2000년대 중반에는 조 블랜튼–댄 하렌–리치 하든, 2010년대 초반에는 지오 곤잘레스–트레버 케이힐–브렛 앤더슨이 등장하면서 영건 3인방의 계보를 이었다. 이들을 기반으로 하여 오클랜드가 2000년대 강호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는 빌리 빈이 선발진을 구성하는 철학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사다난한 2016시즌이었지만 그는 비로소 최신버전 영건 3인방을 출격시킬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소니 그레이, 션 마네아, 켄달 그레이브먼이 바로 그들이다. 유망주 시절 기대치보다 우수한 활약을 보이며 어엿하게 오클랜드 선발진을 이끌어나갈 이들. 세 선수에 관해 차례로 자세히 알아보자.

 

그럼에도 나는 오클랜드의 에이스다, 소니 그레이

그레이는 2011년 1라운드에서 오클랜드의 지명을 받은 우완투수이다. 2013시즌에 데뷔하여 팀의 지구 우승을 도운 바 있으며, 그 해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는 1선발이었던 바톨로 콜론을 제치고 5차전에 선발 등판하기도 했을 정도로 데뷔 때부터 눈에 띄는 재목이었다. 이후 2014시즌에는 14승 10패 3.08의 평균자책점, 2015시즌에는 14승 7패 2.7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에이스 계보에 올랐으며 사이영상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올시즌 그의 쾌속질주에 제동이 걸렸다. 부상으로 22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하였으며, 5.69의 평균자책점은 예년의 2배에 근접할 정도로 심각한 수치였다. 그의 부상에 관해서는 작은 체구(5피트 10인치; 약 178cm)에 대한 그동안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부활을 긍정적으로 점쳐볼 수 있는 요소가 몇 가지 존재한다.

그는 올시즌 승모근과 팔뚝 부상으로 각각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바 있다. 그러나 승모근 부상은 흔히 투수들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부상이 아니며, 완치된 후 이로 인한 기량 악화는 거의 없는 편이다. 또한 그는 팔뚝 부상 이후에도 별다른 후유증 없이 복귀하여 9월 28일 경기에 나섰으며, 수술 없이 예년과 같은 오프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구속, 무브먼트, 그라운드볼 비율, 삼진율 등 표면적으로 보이는 세부 지표에서는 이전과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 피홈런이 늘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지만, BABIP*의 증가(.255→.319)나 잔루율의 감소(77%→64%)를 참고했을 때 불운이나 심리적 요소가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BABIP : 인플레이된 타구가 안타로 이어진 비율

팀 사정상 트레이드 루머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고 마네아와 그레이브먼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와중에도, 오클랜드 1선발이 그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오클랜드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그의 부활이 필수적이다.

이제 연봉조정 1년차에 들어서지만 그는 마네아–그레이브먼–코튼–멩덴으로 이어지는 오클랜드 선발진의 맏형이다. 마운드 위에서 투수로서의 역량뿐만 아니라 한 팀의 투수진을 이끌어야 할 역할면에서도 진짜 ‘에이스’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빌리 빈, 그리고 오클랜드 팬들의 시선이 그에게 더욱 집중되는 이유이다.

 

2선발의 등장, 션 마네아

마네아는 2013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보충픽 전체 34순위로 캔자스시티 로얄스에 지명되어 보충픽 사상 최고액인 355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그는2015시즌 중반 벤 조브리스트 트레이드에서 애런 브룩스와 함께 어슬레틱스로 팀을 옮기게 되었는데, 이후 부상을 떨치고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패스트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의 3가지 구종을 이용하여 타자를 상대한다. 90마일에서 최대 96마일에 이르는 패스트볼과 생동감있는 슬라이더는 모두 플러스급 구질로 평가받으며, 트레이드 이후 그립을 바꿔잡은 체인지업도 싱킹성 무브먼트가 강화되었다. 덕분에 2016년 초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전미 48위 유망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트리플A에서 3경기 1.5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자 빠르게 콜업되어 4월 29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는데, 그의 빅리그 적응기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데뷔 후 첫 세 경기에서 16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콜업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지만, 올스타전 무렵을 기점으로 그는 180도 다른 투수로 변신했다.

아래는 그의 첫 11경기, 이후 14경기의 성적을 나타낸 표이다. (후반 14경기에 구원등판 1회가 포함되어 있는데, ‘평균 소화 이닝’ 항목에서는 해당 등판의 기록을 제외하고 합산하였다.)

그렇다면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진 이유가 무엇일까? 체인지업에서 바로 그 해답을 엿볼 수 있다.

좌완투수인 그는 상대적으로 커맨드가 좋지 못한 슬라이더를 우타자 상대로 자신있게 던지지 못하는데, 따라서 우타자 상대 시 초반 카운트를 잡아나갈 때 패스트볼을 계속해서 던지는 경향이 있었다. 타자들은 그 경향을 파고들었고 초반 11경기에서 그의 초구와 제 2구 패스트볼의 피안타율은 4할에 근접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꺼내든 해결책이 바로 체인지업의 사용을 늘리는 것이었다. 체인지업 비중은 후반 14경기에서 32%로 시즌 초반에 비해 9%포인트 가량 증가했는데 이를 카운트 초반부터 던지기 시작한 것(초구 체인지업 비중 23%→37%)이 주요한 변화였다. 덕분에 직구의 위력은 배가되었으며, 단조로움을 탈피한 그는 변화에 속수무책이던 타자들을 상대로 카운트를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삼진율의 증가 및 피안타율의 감소로까지 이어졌다.

콜업 시기와 피칭 레퍼토리에 관한 우려와 문제점을 잠재우고 본인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낸 마네아. 이제 그가 그레이와 좌우 원투펀치를 형성할 재목이라는 것을 증명하기까지 과제가 두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홀수년도마다 그를 괴롭혀온 부상 문제 털어내기, 그리고 우타자를 상대로도 자신있게 던질 수 있는 슬라이더 장착하기. 그의 2017시즌을 기대해본다.

 

땅볼, 그리고 또 땅볼. 켄달 그레이브먼

리치 힐, 헨더슨 알바레즈, 존 액스포드, 라이언 매드슨, 마크 젭진스키. 이는 오클랜드가 2016시즌에 앞서 영입한 주요 투수 목록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수많은 땅볼 타구를 양산해내는 ‘그라운드볼 투수’라는 점이다.

오클랜드가 그라운드볼 투수를 수집하는 것은 최근 투고타저 현상이 완화되고 홈런이 증가하는 추세와 관련이 깊다. 스몰마켓인 그들이 값이 비싼 빅뱃 자원을 영입하기에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므로, 이를 역이용하여 홈런을 적게 내주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다섯 명의 선수는 올시즌 ‘9이닝당 피홈런 0.59개’라는 성적을 합작하였는데, 이는 이 부문 정규시즌 1위팀인 메츠(0.95개)보다도 훨씬 뛰어난 수치이다.

팀의 이러한 전략의 중심에 서 있는 선수는 바로 그레이브먼이다. 탈삼진 비율은 낮지만 컨트롤이 뛰어난 그라운드볼 투수인 그는 데뷔 2년차인 올해 52.1%의 땅볼을 유도하며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들 중 이 부문 9위에 올랐다.

그는 포심 패스트볼을 거의 던지지 않고 평균 구속 93마일의 싱커를 60%, 평균 구속 88마일의 커터를 20% 가량 구사한다. 두 구종은 스트라이크 존 가장 아랫부분에 제구되며, 싱킹성 무브먼트가 뛰어나 흔히 공이 타자들 배트의 아랫부분에 맞게끔 유도된다. 나머지 20%는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으로 골고루 구성되는데 완성도가 높은 구종들은 아니지만 타자들에게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그레이브먼은 싱커를 철저히 아래쪽에 제구하여 타자들로부터 땅볼 타구를 유도해낸다. (사진 출처=BrooksBaseball)

 

그라운드볼 투수들의 주요한 특징은 내야 수비진의 역량에 성적이 일정 부분 좌우된다는 점이다. 올시즌 오클랜드 내야진은 1루수 알론소, 2루수 라우리, 3루수 발렌시아와 힐리, 유격수 세미엔으로 구성되었는데 평균 이상의 수비를 보여준 포지션은 유격수뿐이었다. 따라서 그레이브먼이 수비로 인해 성적에서 손해를 보았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는 개선될 여지가 충분하다. 알론소는 수비만큼은 뛰어난 1루수로 정평이 나 있고, 2루에는 수비가 하락세에 들어선 라우리 대신 유격수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는 웬들이나 핀더가 주전 경쟁에 뛰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곧이어 승격될 탑유망주 바레토와 채프먼이 각각 2루, 3루 포지션에서 평균 이상의 수비를 보여줄 것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컨트롤 능력을 유지하고 땅볼을 꾸준히 유도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 확실시된다.

그레이브먼은 브렛 라우리, 프랭클린 바레토 등과 함께 조쉬 도날드슨 트레이드의 주축으로 어슬레틱스로 이적하였다. 도날드슨 트레이드의 실패를 되돌리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럭무럭 성장 중인 바레토와 더불어 그의 꾸준함, 그리고 기대 이상의 활약이 어슬레틱스 팬들의 눈물을 조금이라도 닦아줄 수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 어린 선수들이라 증명해내야 할 것이 많지만, 이는 반대로 성장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레이의 부활과 마네아, 그레이브먼의 꾸준한 성장이 뒷받침된다면 오클랜드는 단번에 리그에서 가장 어리고 촉망받는 선발진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영건 3인방과 함께, 또 한번 빌리 빈 매직을 기대해 본다.

 

자료 출처 : Fangraphs, BrooksBase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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