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19시즌 리뷰] 한화 이글스 – 3위에서 9위로

(일러스트=야구공작소 박주현)

시즌 성적 – 58승 86패 9위

장장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시즌은 백일몽처럼 사라졌다. 지난해 2위 경쟁을 했던 팀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졌다. 한 해 농사가 판가름 난 9월 중순이 되어서야 지난해의 모습을 보여줬다. 최하위는 면했지만 그건 상상 이상을 보여준 롯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비자발적 탈꼴찌’였다.

선수단 구성에서 가장 큰 변화는 외국인 투수 전면 교체와 중견수 이용규의 이탈 정도였다. 크다면 큰 변화지만 3위 전력의 얼개는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진 마냥 파문은 잔잔히,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 종착지는 9위라는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발단은 베테랑과의 불화였다. 작은 잡음으로 출발했던 사건은 거대한 굉음이 되어 팀에 균열을 냈다. 사실 단서는 지난해에도 있었다. 한용덕 감독이 언론 앞에서 송광민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때까지는 한용덕 감독이 타당한 대처를 했다는 여론이 많았다. 중계에서 잡힌 송광민의 미숙한 플레이와 이어진 ‘미묘한 표정’이 그 근거였다. 그러나 불씨는 완전히 꺼진 것이 아니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배영수였다. 2018년 11월, 배영수가 출전 기회를 찾아 타 팀 이적을 요구했다. 팀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며 그를 방출 명단에 올렸다. 잔불은 FA자격을 얻은 베테랑 선수와의 협상 과정에서 조금씩 커졌다. 선수와 구단이 좀처럼 생각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협상은 2019년 1월까지 이어졌다. 끝내 4명이나 되는 선수(권혁, 이용규, 최진행, 송은범)가 협상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프링캠프 선발대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마침내 폭발음이 들려왔다. 어찌어찌 3명과는 계약했지만 출장 기회를 원했던 권혁이 배영수처럼 이적을 요구했다. 그렇게 한화의 ‘불꽃 남자’로 남을 것만 같던 권혁은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되어 팀을 떠났다.

완전연소한 듯했던 상황은 ‘이용규 사태’가 터지며 더욱더 끔찍한 굉음을 냈다. 2+1년 계약을 맺고 1군 스프링캠프까지 참여한 이용규가 개막전을 9일 앞두고 돌연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방출까지 감수하겠다는 강경한 태도와 협상을 원만하게 끝내고 개막을 앞둔 의아한 시점.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폭탄선언의 동기가 될 만한 건 지난해부터 이어진 한용덕 감독과 베테랑 선수들의 불화설 정도였다. 팀의 입장에선 채 2개월도 되지 않은 계약을 조건 없이 파기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던 상황. 결국 이용규는 무기한 팀 활동 참가 정지라는 전례가 없는 초강경 징계를 받아 시즌을 통째로 쉬어가게 됐다.

악재는 연이어 터졌다. 개막 6일 만에 주전 유격수인 하주석이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 됐다. 채 5월도 되기 전에 이성열, 최진행, 정근우가 돌아가면서 1군에서 빠졌다. 주전 야수 2명이 사라지고 돌아가면서 포지션 공백이 생기자 한화는 신참내기 노시환, 변우혁 등을 계속 선발로 기용하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아무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갑작스레 주전 유격수가 된 오선진도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용규의 공백으로 중견수가 된 호잉은 수비 부담 때문인지 지난해보다 못한 타격 성적을 냈다. 결국 노시환의 기용은 6월 24일, 시즌 타율 0.190과 OPS 0.522를 뒤로 한 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는 것으로 끝났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 3위의 원천이었던 투수진의 붕괴였다. 지난해 79.1이닝씩 소화했던 필승조 이태양, 송은범이 무너지자 뒤를 맡아줄 투수가 사라졌다. 대졸 2년 차 박상원도 지난해만 못했다. 좌완 박주홍은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밸런스를 잃었다. 정우람은 건재했지만, 정우람이 나올 기회가 원천 봉쇄당했다.

몇 년째 정답을 찾지 못한 토종 선발진은 올해도 똑같았다. 투고타저의 흐름을 생각하면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 김민우에 대한 기대치는 성적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고, 김범수는 스트라이크조차 던지지 못했다. 장민재는 꾸준히 로테이션을 소화하다 체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신입 외국인 듀오 워릭 서폴드, 채드 벨이 분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한번 처진 기세는 시즌 끝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일찌감치 관심사는 포스트시즌이 아닌 ‘꼴찌 경쟁’으로 옮겨갔다. 그마저도 롯데가 순식간에 바닥을 파고 지하를 찾아 떠나면서 별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지난해 호성적을 두고 ‘이제 시작’이라는 평과 ‘반짝 행운’이라는 평이 엇갈렸는데 이제 후자 쪽으로 무게추가 크게 기울었다. 결국 한화는 확실한 육성 파이프라인을 수립해야 한다는, 해묵은 과제를 다시 떠안았다.


최고의 선수 – 최재훈, 채드벨, 서폴드

최재훈: 규정타석을 채운 역대 이글스 포수 중에서 가장 높은 wOBA, 가장 높은 타격 WAR을 기록했다. 올해 리그에서도 양의지 다음가는 최고의 포수였다. 두산에서 트레이드됐을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 해주리란 기대는 없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최근 10년간 한화 최고의 트레이드로 꼽을 수 있다.

채드벨, 서폴드: 데드암 증상이 의심됐지만 키버스 샘슨은 자신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3위 등극의 견인차가 됐다. 확실한 성적을 낸 선수를 교체한다는 건 이래저래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둘 다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리그에서 손꼽히는 외국인 원투펀치가 됐다. 한화 스카우트가 2년 연속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1년 만에 마주한 한화의 민낯

KBO리그 로스터에서 투수의 비중은 13~15명 정도다. 2019 한화 투수진에선 외국인 선발 투수 2명과 정우람, 안영명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선수가 낙제점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분명 강점 있는 선수가 많고 잠재력 있는 영건도 없지 않기에 더 안타까운 결말이었다.

몇 년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 선발 후보군은 2보 후퇴한듯한 면모를 보였다. 한화는 올해 선발로 15명을 기용했지만 서폴드와 채드벨을 빼고는 한 명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오래 버텼던 장민재는 내년 만 30세가 되는 기교파 투수로 큰 폭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즉 향후 팀의 청사진을 그려야 할 기대주들이 모조리 밑바닥을 찍은 것이다. 특히 데뷔 후 가장 많은 103이닝을 소화한 좌완 김범수의 실패가 가장 뼈아프게 다가온다.

야수진 역시 심각한 결과를 냈다. 지난해 2위에 올랐던 외야 수비 WAA(평균 대비 승리기여도)는 이용규 이탈 쇼크를 이겨내지 못하고 8위로 추락했다. 주전 수비수의 급작스러운 이탈은 쉽게 메울 수 있는 공백이 아니었다. 타격 성적은 3위를 했던 지난해에도 하위권이었고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김태균은 언제나처럼 한화 부진의 원인이라는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부실한 팀 타선에서 1인분을 해냈다. 타선 부진의 진짜 이유는 김태균이 아닌 다른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한화 선수단의 중심에는 30대 선수가 즐비했다.


실패로 돌아간 급진적 신인 육성 계획

베테랑 위주의 로스터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뛰어난 신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30대 선수들이 꾸준히 기용되는 게 문제다. 이런 한화의 오래된 고민 때문이었을까, 시즌 초반 한화는 무리해 보이는 신인 야수 기용을 이어갔다. 주전 부상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리빌딩이 더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도 읽혔다. 그러나 코칭스태프가 가장 강하게 밀어붙였던 노시환 카드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2년 전 김성근 전 감독이 경질된 가장 큰 이유는 장기적 계획의 부재였다. 당장의 성적을 위해 황혼기를 눈앞에 둔 선수를 FA로 비싸게 영입하고 신인 성장과 기용은 등한시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런데 올해 한화의 신인 기용에도 계획 부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KBO리그는 프로 입단 첫해에 주전을 밀어낼 성적을 쉽게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녹록지 않다. 모든 선수가 강백호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노시환의 중용은 마치 그가 강백호가 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인디언식 기우제처럼 보였다. 대체할 선수가 퓨처스리그에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잠재력 있는 선수일지는 몰라도 아직 무르익지 않은 선수에 가까웠다. 인내심은 좋았지만,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근거가 부족했다.

2019시즌 한화에는 이렇게 ‘무한 인내’가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기용도 많았다. 프로 선수는 기회가 왔을 때 바로 잡아야 한다는 숙명을 안고 있다. 하지만 성공한 선수 모두가 첫 기회를 잡았던 것은 아니다. 무수한 실패를 딛고 일어난 선수가 더 많았다. 하지만 한화에선 짧은 기회만 제공받고 1군과 2군을 오르내린 선수가 많았다.

고졸 2년 차 투수 김성훈과 고졸 1년 차 신인 노시환은 한화의 시즌 운영이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임기응변에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스프링캠프 동안 언론에선 김성훈을 ‘선발 로테이션 신규 진입 1순위 후보’로 묘사했다. 3월 27일엔 팀의 시즌 4번째 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3.1이닝 4실점에 그친 뒤 같은 달 30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4월 28일에 다시 1군에 복귀했지만 이후 14번의 등판에서 선발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단 1번의 부진으로 겨우내 그린 밑그림을 도화지 채 찢어버린 것이다.

좌완 박주홍 역시 정확한 역할 없이 1년을 보냈다. 어떤 때는 선발로, 어떤 때는 왼손 타자를 상대하는 원포인트 스페셜리스트였다. 퓨처스리그에서는 선발로, 1군에서는 원포인트 릴리프로 뛰었다. 1군에서는 점점 원포인트 구원에 실패할 때가 많아졌다.

한화는 1년 동안 15명의 투수를 선발로 기용했다. 부상과 같은 변수도 있었겠지만, 계산이 빗나갈 때마다 새로운 카드를 만지작거렸다는 뜻이다. 장기적인 계획이 준비되지 않았음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오산으로 인한 시행착오였든 즉흥적인 변주였든 간에 결국 방향을 잃고 1년을 허비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결국, 한화는 다시금 오래된 숙제를 마주하게 됐다. 지난해 받아낸 3위 성적표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딱 좋은 핑계가 된 걸지도 모른다. 신기루를 걷어내고 현실을 마주할 때가 됐다. 지난해 성공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것. 10년 넘게 중심타선에 설 만한 신인 타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류현진 이후 제대로 된 한국인 선발 투수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 이것이 2019년을 끝낸 한화 이글스의 눈앞에 놓인 현실이다.

기록 출처: STATIZ

에디터=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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